회사에 다니는 대한민국 직장인, 특히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사무실에 홀로 남겨지는 일이 많은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이 영화 '오피스'를 보지말아라. 업무 능률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 있다. 아니, 야근 자체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호러와 스릴러를 '무섭다'고 분류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 중 대다수가 공감하는 구분법은 영화를 본 뒤 일상에서 수시로 엄습해오는 섬뜩함의 유무. 집에 돌아가 홀로 침대에 몸을 눕혔을 때, 머릿 속을 괴롭히는 잔상들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장롱 속에 왠지 누가 있는 것 같고(장화, 홍련), 이불 속이 부풀어 오른다거나(주온), 침대 밑, 심지어 바람에 날리는 커튼에 누군가 느껴지고(인시디어스3), 아니면 온 집안 곳곳(파라노말 액티비티)이 다 무섭다는 기분이 들 때, 관객들은 '내가 다시는 호러 따위를 보나봐라'를 거듭 되새긴다.
하지만 이게 바로 또 호러와 스릴러를 보는 참맛 아닌가. 보고 났는데 장면조차 생각나지 않는 스릴러는 의미가 없다. 다행히 '오피스'의 경우엔 집에서 딱히 '그 사람'이 생각날 염려는 없다.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긴 하지만, 정작 이야기 전반을 이끄는 것은 회사, 그것도 늘 혼자 야근하는 사무실에서니깐.
야근을 해봤던 누구라도 겪어봤음직한, 홀로 남겨져 웅성이던 낮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 공간이 주는 공포스러움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놨다. '현실밀착스릴러'라는 설명이 딱 맞는 것처럼,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은 회사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든다. 유독 커다랗게 들리는 키보드 타자 소리, 프린트 출력 소리, 사각거리는 펜 소리,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까지 낮에는 그저 다 평범했던 모든 것들이 공포다.
'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를 각색한 홍원찬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오피스'는 배우 고아성, 박성웅, 배성우, 류현경, 박정민, 오대환, 김의성, 이채은 등의 실감나는 연기와 더해지면서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 시켰다. 배우 누구도 허투루 보면 안된다. 'OOO가 범인이다'는 그냥 흘려 들어라.(물론 알고 봐도 무섭다.)
단순히 갑작스러운 효과음으로 놀래키는데만 치중하지 않고, 시시각각 조여오는 심리적 공포를 지속적으로 안겨준 점, 그리고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토할 것처럼 리얼한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가히 압권이다.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아 찬사와 기립박수를 받았다고는 하는데, 해외보다는 분명 국내 정서에 더 와닿을 만한 스릴러 영화다. 대한민국 취준생, 직장 초년차라면 특히 공감할 만한 구석이 상당하다. 더럽고 무서울 만큼 힘든 입사와, 그렇게 구겨 들어간 회사 생활의 맞닥뜨린 현실이, 영화적 스릴러와 맞물려 진짜 현실밀착형 공포를 낳았다.
오는 9월 3일 개봉. / gato@osen.co.kr
'오피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