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것도 광복 70주년, 광복절에 말이다. 의미 깊은 천만 돌파를 놓고 '최동훈 감독의 연출력', '화려한 캐스팅', '광복 70주년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확실한건 전면에 나서는 배우들을 든든하게 만들어준, 천만 돌파의 또다른 주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배우 박병은이 있다. 극 중 카와구치 장군 역을 맡은 박병은은 친일파 못지 않게 관객들의 욕(?)을 얻어먹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영화의 극적 재미를 더했다. 세 명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조선인 300명을 죽였다는 장면과 자신과 부딪힌 조선인 소녀를 죽이는 장면 등은 극장을 나온 관객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이다.
이렇듯 주연 못지 않은 임팩트를 남긴 박병은은 그 임팩트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강심장으로 촬영에 임했어야 했다며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조선인 소녀를 죽여야 하는 장면에선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을 정도였다고.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가뜩이나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제가 죽이는 장면을 촬영하려니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라며 다음번에 그 소녀를 만나면 꼭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일본 장군 카와구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부담이 있었죠. 하지만 배우가 그런 것들은 마음 한켠에 몰래 놔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맡은 캐릭터이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하니까요. 그래서 소녀를 총으로 쏘는 장면에선 최면을 걸었어요. 저 소녀는 양동이다, 주전자다, 이렇게요(웃음). 카와구치는 본인의 나라에선 추앙받는 인물이었을테고, 본인은 나라에 해가 되는 인물은 죽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테니 그런 마음가짐을 먹고 연기를 하려고 했죠. 처음엔 사실 힘들었어요. 설정이 좀 세잖아요. 진짜 소녀를 보면서 '움직이는 나무다' 이렇게 최면을 걸었던 것 같아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박병은로서의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말 미안했어요. 또 바빠서 그 소녀를 잘 챙겨주지도 못했네요. 다음 번에 만나면 꼭 선물을 해줄거예요. 하하."
부담도 걱정도 컸던 역할인데 왜 박병은은 '암살'을 해야만 했을까.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단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과 꼭 한 번 작업을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박병은을 '암살'로 이끌었다. 그렇게 만난 최동훈 감독과 '암살'을 보며 박병은은 흥행을 일찌감치 예견했단다.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죠. 그리고 극 중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있잖아요. 시나리오가 좋은데 배우들 캐스팅 라인업까지 확인하니 진짜 하고 싶어서 미치겠더라고요(웃음). 사실 촬영 전에는 시나리오가 좋았지만 천만 관객이 들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촬영을 점차 진행하다보니 감이 오더라고요. 현장에서 감독님의 연출력을 보면, 감이 와요. 그리고 세트장의 웅장함, 디테일 등을 보면서 잘될 영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욕심났던 작품이기에 박병은은 뭐든지 열심이었다. 오디션부터 시작해서 일본어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한 박병은은 최동훈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고 그렇게 카와구치가 됐다. 극 중 카와구치가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는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바로 박병은이 오디션 현장에서 스스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단다. 모든 것을 카와구치 입장에서 생각한 덕분이었다.
"'암살' 리딩을 마치고 연락을 기다렸더니 감독님이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한편으로 가능성 있다는 기쁨과 한편으론 내가 모자랐다는 암울함이 들었죠. 이후에 뭘 준비해야할까 하다가일본어 대사를 일단 통으로 다 외웠고 카와구치의 인생을 생각해봤어요. 영화에 카와구치가 핸드크림을 바르잖아요. 그 설정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핸드크림은 군인하고는 너무 반대의 이미지잖아요. 그래서 오디션때 핸드크림하고 총도 준비해갔죠. 옷 중에 제일 군복같은 옷이 있어서 그것도 입고 가고 헤어샵에 가서 일본 장교 머리를 해달라고 해서 갔어요(웃음). 그런 준비들을 해서 감독님께 모든 걸 보여드리고 나오니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시더라고요. 하하."
"일본어는 처음 접한 언어였고 제2외국어로 연기한다는게 진짜 힘들다고 다른 배우들이 그러더라고요. 다른 나라 말에 감정까지 담아야되니까요. 그래서 일본어 때문에 연기가 치이기는 싫었어요. 촬영 한달 전에 다 외웠어요. 일본어 선생님하고도 수업을 했어요. 일본 원어민 선생님이 녹음해주신 것도 듣고 그랬죠. 죽을 때까지 안 잊혀질 것 같아요. 일본어의 한 음절음절 신경을 많이 썼어요." / trio88@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