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쩐의 전쟁’, ‘대물’, ‘야왕’의 원작자인 만화가 박인권 화백. 그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탄탄한 이야기로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만화가 드라마로 자주 제작되는 것은 극적인 효과가 어떤 매체를 통해 전달되더라도 대중에게 소구되기 때문일 터다.
박인권의 작품인 ‘여자전쟁’은 이번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텔레비전 서비스인 IPTV 전용관을 통해 안방극장을 찾는다. 소위 잘나가는 만화가이자 드라마 제작진의 ‘러브콜’을 많이 받는 그가 IPTV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매체에 대한 도전에 가깝다. ‘여자전쟁’을 비롯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은 다음 달 초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야기는 총 6화다. 6화는 연결된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구성이다. 아래는 지난 20일 서울 강남의 한 주점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만난 박인권과의 일문일답이다.
-‘여자전쟁’이 이번에 IPTV 전용관에서 볼 수 있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원작자로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다. 긴장된다. IPTV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PTV가 위축돼 있는 만화 산업이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자전쟁’을 IPTV 첫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내 작품 대부분은 드라마로 제작이 됐거나, 앞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여자전쟁’ 역시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제작사로부터 IPTV에서 공개하자는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우려도 있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성공을 거뒀는데 왜 실험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IPTV라는 분야가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내 자신을 노출하는 편이 아니다. 은둔형 생활을 하는 편이라서 IPTV로 영화를 본다. 일을 하다가 영화를 보기도 하고, 다시 일을 하려고 영화를 멈추기도 한다. 지상파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지 않아도 IPTV를 통해 언제든 본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PTV가 도전할만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여자전쟁’은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이지 않나. 그래서 지상파 편성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럼 IPTV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 박인권의 작품은 인기가 많을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모든 관계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새로운 장르에 손을 대야 최고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했던 장르는 결국 아류밖에 되지 않는다. 모두 동의하는 사안일 것이다. 빙수에 된장을 섞어먹는다는 발상, 파격적이지 않나. 내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실 범상치 않은 이야기, 역발상을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작품에 좋은 점수를 준다고 생각한다.
-‘여자전쟁’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부제가 ‘여자를 이겨야 세상을 이긴다’이다. 그동안 내가 남성 중심의 작품을 많이 썼다. 여자 중심의 작품을 하고 싶어서 고민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김수현 작가님처럼 쓸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여자를 다룰까 하다가 이 작품을 쓰게 됐다. 내 작품은 스포츠신문에서 많이 연재됐다. 매체 특성상 색깔이 진한 작품이 많다. 속된 표현으로 성인물이라고 하는데 성인물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인물은 여성을 벗기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오해를 하는데, 그건 보는 독자와 시청자를 모독하는 일이다. 이야기를 위한 수단이지 노출이 욕망을 다루기 위한 것이라는 시선은 유치하고 경박하다고 생각한다. 성인물이라는 표현 자체가 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드라마화되면 이야기의 세기가 약해지는데 원작자로서 아쉽지 않나.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를 보면 보통 성에 대해 개방적인 나라다. 성을 통제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성적인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람들의 자각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통제하게 해야지 다른 사람을 통해 통제하는 일은 억압이다. 사람은 스스로 판단해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본다. 물론 이탈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통제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아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에 대해 초자연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통한 성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나.
종이 산업이 사양 산업이다. 영상 작업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나는 7~8년 전부터 그렇게 염두에 두었다. 영상화는 필수다. 그 점이 아쉽다. 만화가로서 암담한 이야기다. 만화 산업이 잘 되고 제 3의 창출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다는 게 안타깝다. 만화는 만화로만 존재했으면 좋겠지만 서글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독자에게 일관성 있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만화, 영화, 드라마, 소설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르다. 만화 독자는 특히 독특하다. 생략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만화에 있는 땀방울과 열십자 그림만 봐도 감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압축미가 만화의 장점이고 기술이다. 만화 독자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깊이는 있어야 한다. 만화가가 독자에게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된다. 그러면 말이 많아지고 독자를 무시한다. 단순하게 접근하면서도 가벼우면 안 된다. 남는 게 있어야 한다. 남는 게 없는 가벼운 이야기는 실망하기 마련이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그런 합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이 만화가로서 어렵다. 만화를 보고 인생이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게 무엇인가, 이런 긴 여운을 갖게 만들고 싶다. / jmpy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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