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제작발표회는 없다. 재밌는 프로그램 만들어서 역지사지가 뭔지 보여드리겠다."
불과 2주 전 KBS 2TV 예능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의 두 번째 제작발표회에서 이경규가 출연진과 제작진을 대표해 힘차게 내뱉은 각오다. 특히 프로그램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차례로 하차를 선언하고 번복한 두 원로, 조영남과 김수미로 인해 마련된 이 자리에서는 자신을 돌아본 이들의 의욕 넘치는 모습이 그려져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3번째, 4번째 기자회견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어'라고 농담했던 조영남이 머쓱해질 정도로, 이들의 파이팅 넘치는 각오는 허공에 흩뿌려질 위기에 처했다. '나를 돌아봐'는 출연자 최민수가 제작PD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하자 방송이 결방된 것. 현재 최민수의 거취는 물론 프로그램 존폐에 대해서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를 돌아봐'는 당초 21일 방송분에서 최민수의 사과 인터뷰를 내보낼 계획이었다. 제작진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최민수의 심경을 카메라에 담았고, 고심 끝에 사과 인터뷰를 방송하기로 했던 것. 프로그램 안에서 일어난 일을 프로그램 안에서 말끔히 해소하는 '나를 돌아봐' 제작진의 결자해지가 또 한 번 기대를 모으는 순간이었다.
물론 말다툼과 신체적 접촉은 사안의 중대성이 다르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본질이 같고, 이미 당사자가 원만히 화해하며 갈등이 봉합됐으므로 시청자는 최민수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지켜본 후에 이번 사안에 대한 의견을 낼 기회가 있었던 것.
'나를 돌아봐' 제작진은 20일 "19일 오후 진행됐던 '나를 돌아봐' 촬영현장에서 최민수 씨와 PD가 촬영 콘셉트를 상의하던 도중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오전 일찍부터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진행된 촬영으로 피곤이 누적된 상태에서 의견을 맞춰가는 중 최민수 씨와 PD가 감정이 격해져 감정싸움으로 번졌다"고 설명하며, 최민수가 PD를 찾아가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 이들이 오해를 풀고 원만히 합의했다고 전한 바 있어, 최민수가 시청자에게 어떤 사과를 전할지 궁금증을 높인 바 있다.
하지만 독립PD협회에서 이번 사건에 갑을프레임을 덧씌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타인 최민수를 슈퍼갑, 방송사 KBS와 제작사를 갑, 제작PD를 을로 설정한 이들은 "독립제작자들을 을로 보는 갑의 고질적인 반인권적 행위를 행동의 모범을 보여야할 스타 연예인 출연자가 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며 "촬영현장에서 일어난 심각한 폭행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비상식적인 제작사와 KBS의 무책임한 태도, 가해자의 사과에 시청자들은 물론 독립PD, 방송 스태프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성명서를 발표해 여론을 들끓게 했다.
방송사가 '갑'이라는 독립PD협회의 주장은 이번 결방 사태에 비춰볼 때 일부 설득력을 잃는다. 시청자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는 여론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 것. 폭력 당사자가 방송에 나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시청자의 의견을 수용해 한 호흡 쉬어가는 결정을 한 '나를 돌아봐'는 당사자 간에 이미 오해가 풀렸음에도, 일방적인 주장으로 인해 치명적인 흠집을 입게 됐다. '나를 돌아봐' 측은 이 같은 독립PD협회의 주장이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면서 조만간 반박하는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상황. '나를 돌아봐'가 오명을 벗고 다시 방송을 재개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한편 자아성찰 리얼리티 '나를 돌아봐'에는 조영남과 이경규, 김수미와 박명수, 최민수와 이홍기가 출연 중이다. /jykwo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