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문이 등장했다. 그는 안면근육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다양한 표정 변화를 보이는 연기자가 아니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한 듯 대사를 내뱉지만 미묘하게 변화하는 눈빛과 미간의 주름만으로도 위협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그의 연기에는 시청자를 설득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지난 21일 오후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라스트(극본 한지훈, 연출 조남국)’에서는 서울역 지하 세계 No.3 작두(윤제문 분)가 출소해 사라진 배중사(김영웅 분)를 찾으며 곽흥삼(이범수 분)과 장태호(윤계상 분)을 위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모범수로 복역 생활을 마친 작두는 마중 나온 독사(이철민 분)와 악어(장원영 분)에게 “흥삼인 잘 있냐? 보고 싶네 그 자식”이라는 말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 얽혀있는 인연을 암시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등장을 했다. 이어 작두는 흥삼을 찾아가 사라진 배중사의 행방을 물으며 그를 위협했다. 흥삼이 배중사를 담궜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작두의 말에 흥삼은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며 이를 부인했고, 작두 역시 흥삼의 말을 믿는 듯 했다. 서울역을 접수하며 함께 고생해 온 배중사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는 작두는 “배중사 찾아내. 만약 누가 해코지 했으면 그놈도 찾고. 뒤처리는 내가 한다”며 No.1 흥삼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로 기싸움을 벌였다.
작두가 흥삼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5년 전, 흥삼의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갔던 것. 흥삼은 당시 분에 못 이겨 한 남자를 살해했고, 그 현장을 본 류종구(박원상 분)와 작두 앞에서 “누군지, 왜 죽였는지 알려 들지 마”라고 말했다. 이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작두는 흥삼이 범행에 사용했던 야구배트에 자신의 지문을 묻히기 시작했고 “이제 겨우 서울역에 자리 잡았다. 이럴 때 No.1이 교도소에 가면 조직이 파토가 난다”며 흥삼을 살해 현장에서 피하게 했다. 시체의 피를 자신의 얼굴에 묻히며 “가진 거 쥐뿔도 없는 노숙자 새끼들인데 의리 하나라도 챙겨야지 안 그래”라고 되묻는 작두의 눈빛에는 오직 조직과 흥삼을 지키기 위한 일념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편 작두는 독사와 악어의 계략으로 배중사가 사라진 배후에 장태호가 있다고 믿게 됐고, 그를 쫓기 시작했다. 작두의 계획을 눈치 챈 흥삼은 태호의 사무실이 아닌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오라 귀띔했지만 작두는 이미 흥삼의 머리 위에 있었다. 흥삼 보다 한 발 앞서 그의 펜트하우스에 와 있던 작두는 평소 흥삼이 아끼던 LP판을 부쉈고 “지금 어딨냐 장태호, 네 오른팔이라며”라며 신경을 긁었다. 이에 흥삼은 “내가 수족이 아주 많다”며 대꾸했고, 작두는 “그럼 하나 잘라가도 되겠네”라고 응수했다. 이런 작두의 말에 흥삼은 “되긴 되는데 지금은 안 된다. 그 수족이 쓸모가 아주 많다”며 태호를 감쌌다. 이에 작두는 5년 전 일을 다시 입에 올렸다. 당시 흥삼이 죽인 사람이 세훈(이용우 분)의 신분을 세탁해준 브로커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작두는 이 사실을 빌미로 장태호를 넘기지 않으면 경찰에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흥삼을 압박했다.
흥삼의 살인을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돌아온 작두는 술도 끊고 담배도 하지 않으며 노숙자들 앞에서 천사와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배중사의 행방불명과 그 진실을 캐기 위한 과정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악마를 깨운 작두는 흥삼의 약점을 가지고 그를 뒤흔들었다. 흥삼 마저 위협할 수 있는 무기와 카리스마, 그리고 의리와 배짱을 가진 이 악마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그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라스트’는 100억 원 규모의 지하경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 드라마다. 매주 금, 토요일 오후 8시 30분 방송. / nim0821@osen.co.kr
‘라스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