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올해 마지막 여름 공포물로 기대를 모은 ‘퇴마, 무녀굴’이 참혹한 수준의 성적표를 받고 고심에 빠졌다. ‘베테랑’ ‘암살’의 매서운 뒷심과 같은 날 개봉한 ‘뷰티 인사이드’ 때문에 어느 정도 고전이 예상됐지만 예상을 크게 밑도는 만 단위 스코어를 기록했다.
개봉 첫날 2만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7위로 불안하게 출발한 ‘퇴마’는 주말까지 나흘간 전국 10만 명도 모으지 못한 채 8위로 하락, 퇴로에 섰다. IP TV 시장이 있다지만 제작비 전액 손실로 이어지는, 누구도 예측 못한 공포스런 결과다.
김성균 유선 등 흠잡을 데 없는 연기파 배우와 비슷한 장르로 흥행을 경험한 ‘이웃사람’의 김휘 감독이 만들어낸 합작품치곤 민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흥행과 별개로 작품성이라도 인정받는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겠지만 아쉽게 이마저도 혹평이 압도적이다.
‘퇴마’의 포털사이트 평점 코너엔 1점 투척과 함께 ‘공포영화 보면서 졸긴 처음’ ‘차라리 클레멘타인을 다시 보는 게 나을 듯’ ‘오글거리는 CG와 조악한 결말, 할 말을 잃었다’ ‘배우들 연기가 아까울 따름’이라는 불만 글들이 대거 올라와 있다. 귀신을 쫓아야 할 퇴마가 정작 손님을 쫓아낸 격이다.
‘퇴마’의 이 같은 흥행 굴욕은 올해 선보인 호러물 세 편의 연속된 부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6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과 7월 ‘손님’에 이어 8월 납량물까지 잇달아 관객의 회초리를 맞은 것이다. 앞선 두 작품 역시 믿고 보는 수준까진 아니어도 엄지원 박보영 류승룡 등 흥행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각각 35만, 82만 명을 모으는데 그치며 막을 내렸다.
국산 호러물의 이 같은 도미노 부진은 비단 올해에만 벌어진 불운한 상황이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작년 7월 선보인 유일한 공포물 ‘소녀괴담’은 호불호가 엇갈리며 48만 명을 동원하는데 만족해야 했고, 2013년 6월 개봉한 ‘무서운 이야기2’는 49만 명이 지갑을 여는데 그쳤다. 그나마 배급력 있는 CJ가 투자한 ‘더 웹툰: 예고살인’이 120만 명을 끌어 모으며 여름 공포물의 체면을 살렸다.
멀리 ‘월하의 공동묘지’ ‘구미호’를 거쳐 ‘여고괴담’으로 대표되던 한국 공포 영화가 왜 이렇게 잔뜩 움츠러든 걸까.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스릴러의 인기와 공포물에 대한 투자 기피를 그 이유로 꼽는다. ‘추격자’ ‘숨바꼭질’ 같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스릴러가 납량물의 인기를 대체했고, 귀신이나 혼령이 나오는 공포물은 점점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영화사 테디웍스 조성훈 이사는 “요즘 관객들은 귀신 나오는 영화를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연쇄살인이나 사이코패스의 잔혹 범죄를 다룬 스릴러를 통해 오싹한 경험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통 공포물에 대한 기대치와 수요가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숨바꼭질’은 2013년 8월 개봉해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감기’ 등과 맞붙어 560만 명 동원이라는 놀라운 흥행력을 보여줬다. 당시만 해도 티케팅 파워가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손현주 문정희 주연이란 점을 상기해보면 스릴러가 얼마나 관객을 파고들었는지 실감하게 해준 사례였다.
투자사들의 관행적인 투자 방식과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름을 대비해 납량물을 내세우긴 해야겠고 총제작비 30억을 넘겨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졸작이 양산되고 있다는 쓴 소리다.
익명을 원한 한 영화사 대표는 “공포물이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등용문 성격이 있다 보니 책정되는 예산이 다른 장르에 비해 박한 게 사실”이라며 “그렇다보니 기획과 시나리오에 끝까지 정성을 쏟기 어렵고 감독과 배우들이 정해지면 촬영부터 들어가고 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로듀서도 “투자사는 신선한 기획과 아이템을 원하지만 어떻게든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손님처럼 간혹 관객 정서와 배치되는 위험한 기획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투자사들의 여름 간판 영화들이 피 말리는 고래싸움을 벌이는 탓에 아예 새우 취급 받는 공포물 제작을 포기하는 사례 또한 늘고 있다. 아무리 공들여봤자 투자배급사들이 사활을 걸고 자사 텐트 폴 영화를 밀다보니 상영을 보장받을 길이 희박하다는 항변이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는 어떻게든 관객이 귀신같이 알아보고 구매력으로 연결되는 만큼, 기승전-투자사 과실로만 몰아붙이는 건 편협한 시각이란 생각이다. 문제는 결국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인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매력적인 텍스트와 신선한 화면이 승부처다./bskim0129@gmail.com
'퇴마'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