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로 사는 가수 김태원은 한마디로 보호해야 할 멸종 위기의 '할매 기러기'였다. 할매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올백으로 곱게 빗어넘긴 긴 머리가 인상적이기 때문. 여기에 기러기 아빠를 상징하는 기러기라는 단어가 붙어 '할매 기러기'가 됐다.
할매 기러기는 딸이 어릴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보냈고, 아내도 아이를 옆에서 보살피기 위해 그곳에서 살지만 가끔가다 한국에 들어오며 남편을 챙긴다. 하지만 10년째 독거노인처럼 혼자 살고 있는 김태원의 삶이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안겼다. 그의 일상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정형돈의 말마따나 이 정도면 정말 구청에서 관리해야 할 주요 관리 대상이었다.
지난 24일 방송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지난주 배우 김영호에 이어 김태원의 냉장고가 공개되며 셰프들의 요리 대결이 펼쳐졌다. 이날 이원일과 홍석천, 최현석과 이연복이 만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최현석과 이연복은 가수 양희은 편 이후 재대결 하는 것이어서 승자에 관심이 쏠렸다. 대결에 앞서 주인공 김태원의 일상이 공개됐다.
그는 "저는 아침에 일어난 경우가 없다"면서 "보통 오후 2시에 일어나서 라면 반 개를 먹는다. 하지만 짜게 먹어서 수프는 다 넣는다. 밥을 먹고 3시부터 음악활동을 하면서 6시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오후 6시부터는 술을 마시는 '술시'이기 때문에 본격 알콜모드가 가동된다. "누가 오면 회를 시켜서 3조각 먹고, 안 오면 치즈에 한 잔을 한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소, 돼지고기를 좋아했지만 어금니가 빠지기 시작하면서 돈가스 정도로 참다가 그 다음에는 짜장면을 먹었고, 결국 앞니로만 먹게 됐다. 임플란트도 안 박히는 잇몸이다"라고 털어놔 '웃픈' 상황이 연출됐다.
그의 아내가 간간히 냉장고를 채워놓고 가고, 때때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반찬을 건네주는 정도다. 외로운 기러기를 향한 따스한 구원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핸드폰 1번을 누르면 119로 연결된다. 살 길은 다 마련해놓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과거 방송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할머니들과 동네 지인들이 오이 김치와 배추 김치, 열무 김치 등 반찬을 챙겨주고 있었다. 5~6년 전에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었다는 그에게 허락된 음식은 식감이 부드러운 두부나 죽 같은 음식이었다. 이날 그는 셰프들에게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 요리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김태원의 집 냉장고는 한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어서 빠지지 않는 관계로 냉장고 속 음식물만 그대로 이동해왔다는 제작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다양한 식재로들로 가득 차 있어 셰프들이 그것을 이용해 만들어낼 요리에 기대감이 쏠렸다.
그는 동남아 요리를 주제로 한 이원일의 '삼겹살 팟티'와 홍석천의 '연어가 똠얌꽁냥' 가운데 이원일의 요리를 택했고, 영양실조를 부활시키는 요리를 주제로 한 최현석의 '돈 워리 비 해피'와 이연복의 '복면완자' 가운데는 이연복의 요리에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이원일은 별이 4개, 이연복은 6승을 차지했다.
록의 전설 김태원이 언제부턴가 자존심과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대중에 친근한 할매로 다가왔다. 그는 적재적소에 어떤 멘트를 날려야할지 잘 아는 전문 방송인들의 예능감에 버금간다. 연약해보이는 겉모습도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일조하면서 호감 가는 국민 록커로 떠올랐다.
돈가스 4년, 냉면을 6년 만에 먹은 김태원은 이날 "의외로 가슴 아픈 록커들이 많다. 록 음악을 많이 들어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록을 알리기 위해 예능을 택했고, 무관심을 관심과 호감으로 만들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기러기 할매 김태원의 일상이 좀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본다./ purplish@osen.co.kr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