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얘기들을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
개그맨 정형돈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했던 이야기는 그 어떤 연예인이 솔직히 말하는 것이라고 운을 떼며 했던 이야기보다 진정성이 있었다. 대중에게 웃음을 안기는 직업인 인기 개그맨인 정형돈의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드리면 안 된다’라는 어깨를 짓누르는 직업의식은 많은 시청자들을 울컥하게 했다. 우리는 유명세라는 핑계를 대며 스타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형돈은 지난 24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방송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 주저함을 보였다.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 못한다고 장난스럽게 말문을 연 것은 둘째 치고, 단순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런 명확한 선택을 하지 않는 화법에 대해 MC 김제동은 개그맨이라서 그런 것이냐고 돌직구를 던졌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출을 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가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게 됐다는 그의 고백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큰 돈을 벌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악성댓글 피해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부의 네티즌을 뜨끔하게 하는 고백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무섭고 시청자는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의 녹록치 못한 삶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 것도 아니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방송에서 개그맨의 애환을 털어놓는 것마저 배부른 고민이라고 여기는 일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터다. 감정 표현마저 복잡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섬세한 성격인데 개그맨들을 이해해달라고 보일 수 있는 고백마저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정형돈의 이야기는 그가 국민 예능인 MBC '무한도전'을 이끌고 있고, 대세 예능인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살짝이나 알 수 있었다.
유재석과 같은 선한 진행을 하고 싶지만, 때론 박명수와 같이 욱하는 마음이 표출돼 그 것마저도 신경이 쓰인다는 정형돈은 김제동을 비롯한 500명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였다. 편안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토크쇼 무대에 서긴 했는데, 그의 말대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담스럽고 위축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긴장되고 온갖 머릿속에 자신이 하고 있는 발언의 후폭풍을 생각하는 게 보여 안쓰러웠던 것. 누가 정형돈을 비롯한 스타들을 솔직한 속내를 보여주는 것마저 불안에 떨게 만들었을까. 정형돈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연예계에는 수많은 정형돈이 존재하고 있다.
이날 정형돈이 ‘힐링캠프’에서 한 이야기는 그 어떤 토크쇼, 그 어떤 스타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진솔함이 묻어났다. “여러분들께서 듣고 싶었던 얘기나 솔직한 얘기들을 많이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 제가 부족했을까 걱정되기도 하는데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정형돈의 모습에서 진짜 솔직한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었기 때문.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인다고 해서 솔직한 것도, 시청자를 웃겨야 하기 때문에 일부를 감춘다고 해서 솔직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힐링캠프’는 개편 후 의미 있는 방송이 됐다. 김제동과 499명의 시청자 MC가 스타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을 하기도, 위로를 받기도 하는 구성인 ‘힐링캠프’.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시선이 있어 더 솔직할 수도,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덕분에 자신의 고민이 돈 잘 버는 스타의 투정으로 보일까봐, 이마저도 고민스러운 인간 정형돈의 진짜 모습을 우리는 엿볼 수 있었다. / jmpyo@osen.co.kr
'힐링캠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