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MC계 4대천왕'이라고 칭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고 남을 웃기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정형돈. "지드래곤도 내가 띄운 것", "제가 정말 많이 띄웠네요"라는 멘트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뻔뻔한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리디 여린 면모를 가진 남자였다.
정형돈은 지난 24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500’(이하 ‘힐링캠프’)에 출연해 500인의 방청객과 마주했다. 방송 초반에는 그간 방송에서 봐왔던 예능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청객과도 친구처럼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스타 제조기’라는 별명도 농담으로 승화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방송이 진행될수록 방송인이라는 가면을 벗은 인간 정형돈의 솔직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특히 김제동이 일어난 자리를 보며 “빈자리가 싫다. 누가 떠나는 게 싫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며 입을 연 그에게서 그간 보지 못했던 아픔과 상처가 보이는 듯 했다.
뿐만 아니라 ‘A 아니면 B’라고 단정 짓는 것이 싫다고 했다가 단정 지을 때는 지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간 정형돈이 느껴졌다. 김제동은 이에 대해 양쪽 감정 어디에도 소속되면 안 될 것 같은, 또는 소속돼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일컫는 양가적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이쪽저쪽 어떤 사람에게도 욕먹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
정형돈 본인 또한 이를 인정했다. 악플이나 욕을 먹는 것이 일상인 연예계 생활을 하며 될 수 있으면 의견을 피력하지 않을 정도로 위축됐다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 있던 500인의 방청객에게도 느껴진 듯했다. ‘정형돈이 다시 태어나도 개그맨을 해야 한다’라는 OX퀴즈에 X를 들었던 한 방청객은 “많이 아파 보인다. 남을 배려하느라 본인 의견을 똑바로 피력하지 못 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에 정형돈은 숨기고 있던 속내를 들킨 듯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연예인 또는 개그맨이라는 직업에 대해 ‘늘 줄을 타고 있는 것 같고, 타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위태로움과 불안함이 동반된다는 의미와 선입견 없이 모든 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이처럼 이날 순간순간 내뱉는 그의 말에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끝없는 고뇌와 애증이 담겨있었다.
이날 정형돈은 “저는 지금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제 생각을 얘기한 게 아니라 이분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현장의 방청객들, 그리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그 어느 방송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날 것 그대로의 정형돈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우려했던 ‘다르다’에서 오는 이질감도, 실망감도 없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인간 정형돈이 있었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개그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대중들의 보는 정형돈의 모습은 천생 개그맨이었다. 그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무게감 또한 더 나은 방송인이고자 하는 욕심과 노력으로부터 온 것. 앞으로는 그 무게감을 좀 더 내려놓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개그맨 정형돈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jsy901104@osen.co.kr
‘힐링캠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