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류승완, 그가 '천만 스코어'보다 더 바라는 것[천만 인터뷰①]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5.08.26 06: 54

류승완 감독이 영화 '베테랑'으로 생애 첫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현재의 관객 추이라면 개봉 25일째가 되는 8월 29일, 천만 스코어를 넘어설 전망이다. 돋보이는 액션 연출로 한국 영화계의 '액션 키드'로 불리며 자신만의 포지션을 확보했던 류승완 감독은 작품의 호평과 별개로 흥행과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던 터. 총 관객수 716만명의 '베를린'(2013)이 '베테랑' 이전 그의 최고 흥행작이다.
머지않아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는 류승완.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OSEN과 만난 그는 의외로 이 '흥행 수치'에 대해 무덤덤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맹목적으로 산술적 수치에 의존하는 세태에 적잖은 '공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천만 스코어'보다 더 바라는 것은 바로 10년 뒤, 20년 뒤에도 한결같이 사랑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이기는 영화'였다.
-'베테랑'이 정말 잘 나왔다. '천만 영화'가 될 것 같은데.

▶솔직히 난 흥행 수치를 얘기하는 것에 대해 적잖은 거부감이 있다. 심지어 어떨 때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하는 사람들끼리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어?', '그 배우를 어디서 찾았어?', '사운드는 어떻게 그렇게 만들었어?'라는 질문들이 오갔다. 지금? 'BEP(손익분기점)가 얼마야?', '극장을 얼마나 잡았어?', '제작비는 얼마야?'라고 묻는다. 나 스스로 수백만명 중에 한 명으로 치환되는 게 달갑지 않다. 그런 스코어를 맞추는 재주도 없다. 그런 질문은 받으면, 다른 식으로 답변하려 한다. ''베테랑'은 긴 시간을 사랑받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10년 후, 20년 후에도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고, 즐거워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시간을 이기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게 스코어보다 욕심나는 내 바람이다.
-그럼 관객들이 당장 극장에서 '베테랑'을 보고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나.
▶'이 영화 참 신난다', '유쾌하다', '통쾌하다', '후련하다', 뭐 이런 반응이었으면 좋겠다.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2천 800명 정도의 관객의 반응을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대한극장에서 2천석에서 봤던 것 이후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이 '베테랑'을 소리지르며 보더라. 놀라고 소름이 돋았다. 그대로 대기실로 뛰어들어가서 황정민 선배에게 전달했더니, '국제시장 때도 겪었다'며 대수롭지 않은듯 '그냥 올라가'라고 하더라.(웃음)
-그날 곁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구체적으로 어땠나.
▶내가 의도한 포인트에서 놀라고, 웃고, 응원하는 게 짜릿하더라. 영화관에서 재밌게 보고, 집에 돌아가서 영화 속 우리가 응원했던 존재에 대한 쾌감, 반대편에 선 사람들, 그들 주변에 기생하는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어쩌면 내가 한끗 차이로 그런 사람이 되진 않을까에 대한 고민도 뒤따랐으면 좋겠다. '베테랑'은 용기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선택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노예같은 삶을 살기도 하고, 가난하지만 주체적으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관객들의 반응을 좀 살피는 편인가? 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반응은 어떤 거였나.
▶그런 후기를 봤다. '베테랑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라 놀랐다.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하니, 난 완전 망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진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받지 못한 내 임금…'. 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내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서도철이나 배기사가 보여준 용기 말인가.
▶어려서 성룡 영화를 보면, 왠지 나도 싸움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록키'를 보면 체육관 좀 다니면 굉장해 질 것 같지 않았나. 그렇듯, 영화 속 서도철(황정민 분), 배기사(정웅인 분)를 보면서 관객들이 '나도 이럴 수 있어'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경찰 액션영화긴 해도, 영웅적 형사라기 보다는,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어떤 서민이 자신의 일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 영화가 갖는 보편성은, 일종의 서민정신이다. 서민들이 승리하는 이야기, 극중 주인공이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내가 승리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나누고 싶었다.
-배우 황정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황정민은 그냥 딱 서도철이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부당거래'와 '베테랑', 그리고 차기작 '군함도' 출연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특별히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그가 좋은 배우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은 기본으로 하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신뢰도도 있어야 한다. 이건 영화를 만드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좋은 배우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라는 거다.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 현장에 나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기 위해서 현장에 나온다. 황정민 배우는 단 한 번도 제 시간에 현장에 온 적이 없다. 항상 빨리 온다. 그래서 일부러 콜타임을 한 시간 늦게 부르기도 했다. 스태프 이름도 다 외우고 있어야 하고, 자기 돈으로 해당 회차의 힘든 일을 하는 파트 스태프를 데려다가 꼼장어를 먹이고, 족발을 먹이는 사람이다. '날 잘 찍어줘', '잘 만들어줘'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본래의 태도다.
-듣고 나니 서도철과 진짜 닮은 것 같다.
▶서도철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황정민이라는 사람의 도움이 컸다. 내가 아는 황정민이 상당부분 투영됐다. 남일을 자기일처럼 하는 사람, 현장을 이동할 때 맨손으로 자기 몸만 이동한 적이 없는 배우다. 뭐라도 손에 들고 이동한다. 현장을 숭고한, 자신의 노동에 어떤 가치가 빛나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과 작업을 안 하고 싶겠나. 일단 성질이 급해서,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다 알아서 하는 것도 너무 편하다.(웃음)
-유아인 악역 연기도 '베테랑'의 한축을 담당했다. 유아인과는 첫 작업이었는데 어땠나.
▶조태오는 유아인이 만들었다. 난 판을 깔아줬고, 그 판을 완성시킨 건 온전히 유아인이다. 조태오라는 인물은 스테레오 타입된 연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식상한 인물이 될 수 있는데, 유아인이 가진 천진한 얼굴, 귀족성, 품위, 나른한 말투와 목소리가 결합돼 조금씩 예상 수위를 뒤틀면서, 다음 행동을 예측 못 하게 만든다. '유아인이 천진하게 웃어서 무서웠다'는 반응을 볼 때 좋았다. 그건 유아인이 만들어 낸 영역이다. 이 영화에서 조태오의 반응이 이렇게까지 좋은 걸 보면, 유아인은 분명 굴러 들어온 복이다. / gato@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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