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난 류승완 감독은 사뭇 진지했다. '베테랑' 이야기보다 앞서,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무너지는 이유에 대해서 적잖은 시간 열변을 토했다. 이 문제는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들과, 소비하는 사람들의 사고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베테랑'의 천만 스코어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는 '흥행 수치'에 집착하게 된 요즘의 영화계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물론 시종 진지로만 점철된 인터뷰는 아니었다. 인터뷰 사이사이 등장한 예측불허의 류승완 감독의 농은, '베테랑' 영화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심어져 있는 것과 유사했다. '미션 임파서블'로 시작한 이야기는 외계인으로 튀었고, 자동차 액션과 괴수, 그리고 '암살'에서 하정우와 전지현 이야기로 이어졌다.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과 동시기 경쟁했다. '베테랑'과 차이점을 꼽아보면 어떤 게 있을까.
▶액션의 대상이 다르다. '베테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싸워줬으면 하는 누군가와 싸운다. 관객들의 바람을 주인공이 대신 실현시켜 주는 거다. 우리 영화의 주인공들은 '미션 임파서블'처럼 세계 평화를 위해 테러리스트를 막아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또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도 막을 수 없다. 그저, 내 친구를 괴롭히고, 힘 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한테 '너 왜 그래?'라고 하는 거다.
-음, 말이 나온 김에…혹시 언젠가 외계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에 도전할 계획은 없나.
▶(진지한 표정으로) 외계인들은 절대 한국에 오지 않는다. 주로 미국이나 멕시코로 간다. 걔네도 한국에 오면 다 잡힌다. 휴전선을 넘어가면 우리는 또 못 따라가지 않나. 그러면 영화가 참 민망하다. 외계인도 불편할 거다. 한 쪽이랑 싸워야 하는데, 넘어가는 순간 어느 쪽이 주적인지 눈치를 봐야하는 순간이 온다. 이걸 알면, 외계인도 그냥 아시아에 올거면 일본 쪽으로 갈 거다.
-꽤 현실적이다. '베테랑'을 초반 기획했을 때, 중고차 절도범을 잡는 형사 이야기를 생각했다가 결국 중고차 절도범 사건 이야기가 들어있는 형사물로 선회했다고 들었다. 이것도 현실의 벽 문제였나.
▶한국에서는 자동차가 달리는 영화를 찍어봤자, 신호에 걸리면 서야 한다. 그래서 당시에 중심 이야기를 변형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신호를 빼도 요철이 많다. 스포츠카라면 차체 밑쪽이 다 긁힌다. 괴수영화도 힘들다. 한강을 넘어갈 정도로 괴수 사이즈가 커지면 곤란하다. 외계인처럼 휴전선이라도 넘어가면 답이 안 나와 힘들다.(웃음)
-이 분위기로 하나만 더 묻겠다. '암살'에서 하정우-전지현을 보고 '베를린'이 떠올랐다. 감독 입장에서도 배우들이 겹치면 그런 게 연상되지 않나.
▶선입견이 작용할 순 있다. 그렇지만 '베를린'에서의 표종성(하정우)과 련정희(전지현)는 '암살'에서의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안옥윤(전지현)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 물론 하정우 배우에게 그런 농담을 건네긴 했다. 마지막 장면에 '우리 전에 부부였잖아'라는 대사가, 상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베를린'에서의 부부를 말하는 것 아니냐고.(웃음) 흠. 어쨌든 다시 말하지만 표종성과 하와이 피스톨이 갖는 매력은 너무 다르다. 그 정도의 다름을 뚫고 관객들이 '베를린'의 캐릭터를 떠올린다면, 그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제 영화를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gato@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베를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