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영웅의 얼리버드]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누구도 괜찮지 않을 것이다.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경우는 다르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음원차트 상위권을 줄세웠다. 꼭 ‘무한도전’ 만의 얘기는 아니다. 차트 100위 안에서 예능 프로그램 덕을 본 음원은 무려 31곡에 달한다. 이미 1위부터 10위까지 도배한 ‘무한도전’ ‘쇼미더머니’에 ‘언프리티랩스타’ ‘슈퍼스타K7’까지 가세하면 하반기 예능음원의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 ‘티키타 리듬에 맞춰 스핀~ 기타 리프 테마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아이유+박명수 팀 ‘레옹’中). 가요제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처음 들어 보았을 이 노래를 능숙하게 따라 불렀다. 박명수가 낯선 리듬과 랩을 연습하는 과정이 짧게 방송되었을 뿐인데, 시청자들은 멜로디를 기억한다. 방송을 통해 학습된 결과다. 우리는 그렇게 예능음원이 히트곡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예능음원이 잘 되는 것은 당연하다.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인기 프로그램 안에서 스토리가 더해져 공감이란 힘을 얻기 때문이다. 문제아 래퍼들에 인간극장 같은 연출로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고, 노래로 감동을 전달했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보문구 또한 반복된다. 결국 대중이 열광하는 건 공감이다. 단순히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좋은 싫든 친숙함을 느끼고 그들의 팬이 되어간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막강한 홍보 툴이다. 가요계에서 예능음원이 위협적인 존재가 된지 오래. 이는 더 이상 음악을 찾아 듣지않는 대중의 분위기도 한몫 했다.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 차트 100위곡을 돌려 듣는다. 하루에도 많은 신곡들이 쏟아지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신선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발굴하기 보다는, 장사 좀 된다 싶으면 비슷한 음악을 찍어내고 제작자들은 너도 나도 히트 작곡가들을 찾는다. TV를 틀어도 몇 안되는 음악 프로그램 속에서 같은 얼굴과 홍보패턴이 반복된다. 피로감이 쌓인 탓이다.
클릭 몇 번이면 가수에 대한 정보는 물론 미공개 곡까지 감상이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음악을 애써 찾아 듣지 않는다. 음악은 넘쳐나도 누가 골라주지 않으면 들을 생각이 없다.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어쩌다 보니 예능이다. 서점 입구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을 믿고 구매하는 심리처럼. 결국 다양한 장르음악을 들려주고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실패한 가요계가 자초한 결과다. 이제 TV가 그 역할을 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는 물론 오디션 심사위원들의 한 마디에도 책임이 요구된다. 대중은 노출된 만큼 영향을 받기 나름이다. ‘세상에 없는 음악’이라는 둥 무책임한 극찬은 대중을 흔들리게 한다. 계산된 이슈에 음원공개까지, 황금시간대에 홍보시간을 배정받고 음원출시되는 과정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어쩌면 스타를 만들고 히트곡을 만드는 건 대중이 아니다. TV가 짜놓은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히트곡은 나온다. 최근 대형 가요 기획사가 예능인을 차례로 영입하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하는 현상이다. 예능 진입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곡을 발표한 한 가요 제작자는 “오랜 기간 고민하고 만든 음악도 작정하고 만든 방송사의 이벤트 음원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방송사의 어떤 이벤트성 음원에도 흔들리지 않을 컨텐츠와 견고한 음악시장을 구축하지 못한 탓이다. 모두가 소몰이 창법을 좇을 때도 후크송 열풍이 불 때도 서로 따라하고 복제하고 베끼는 사이, 믿고 듣는 음악에 대한 기대치는 추락했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의 심리를 간파하지 못한 탓에 이제는 TV가 라디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음원차트도 인기차트가 된 마당에 혁오 같은 밴드 한 팀이라도 더 알려진다면 그걸로 다행이다. 다양한 장르의 좋은 음악이 소개된다면 그걸로 됐다. 단, TV가 올바른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전제 하에./osenstar@osen.co.kr
'무한도전'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