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이 스케치하고 황정민이 색칠한 그림은 ‘작품’으로 탄생한다. 이는 영화 ‘부당거래’(2010)로 한차례 입증됐고, 이번 ‘베테랑’을 통해 쐐기 박혔다. 약 20년의 세월, 메가폰을 놓지 않은 류승완 감독. 그리고 2001년부터 매년 한두 편 이상의 영화에 꼬박꼬박 출연하며 꾸준히 달려온 황정민이다. 두 사람의 짠내 나는 경험과 노하우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일 수밖에 없다.
10년 전 황정민의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소감을 빌리자면, 류승완 감독은 맛깔 나는 ‘쿡방’으로 밥상을 차렸고, 황정민은 군침 도는 ‘먹방’을 선보인 셈이다. 두 사람은 기가 막힌 콤비플레이로 영화 속 모든 장면을 명장면으로 만들고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인상적인 대사들을 남겼다.
‘베테랑’은 안하무인 유아독존 재벌 3세를 쫓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작품. '부당거래' 등으로 류승완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황정민은 베테랑 광역수사대 서도철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아날로그 육탄 액션과 비관적인 상황들을 유쾌하게 타파해나가는 전개, 여기에 곁들여지는 유머 코드가 매력적인 영화다. 그 중심에 황정민 있다. 그는 연극판부터 다져온 잔뼈 굵은 연기력과 노하우로 류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스크린 위에 그려놓는다.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완벽히 소화하는 집중력으로 관객의 완전히 몰입시키는 흡인력도 대단하다.
앞서 류승완 감독은 OSEN과의 인터뷰에서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좋은 배우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이고 굉장히 매력적이다. ‘서도철’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황정민이라는 사람의 도움이 컸다. 내가 아는 황정민이 상당부분 투영됐다. 남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사람, 현장을 이동할 때 맨손으로 자기 몸만 이동한 적이 없는 배우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류승완의 주문을 정확하게 스크린 위에 풀어놓을 배우는 흔치 않다. 러닝타임내내 관객을 뒤흔드는 '베테랑'의 파도타기는 황정민이니까 가능했다는 평이다.
두 사람의 호흡이 찰떡처럼 맞아 떨어지면서 작업도 꽤나 즐겁게 진행된 모양이다. 황정민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정말 류 감독과 함께 재미있는 거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함께 했다. 우리가 즐거우면 분명 관객들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고민이 허투루 했던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밝힌 바다.
이 같은 촬영장의 분위기는 영화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 주의를 잔인하게 그려내면서도 러닝타임내내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류승완 감독의 무르익은 노하우와 황정민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매력이 날린 원투펀치 덕이었을 것이다.
이렇다보니 성적이 안 좋을 수가 없다. 지난 5일 개봉한 ‘베테랑’은 경쟁작들의 연이은 개봉에도 줄곧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흥행 질주, 결국 천만 관객이라는 고지까지 넘어서며 17번째로 천만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두 사람에게도 꽤 의미 있는 숫자다. 돋보이는 액션 연출로 한국 영화계의 '액션 키드'로 불리며 자신만의 포지션을 확보했던 류승완 감독은 작품의 호평과 별개로 흥행과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던 터. 총 관객수 716만명의 ‘베를린’(2013)이 ‘베테랑’ 이전 그의 최고 흥행작이다. 이번 영화로 첫 ‘천만 감독’ 타이틀을 갖게 됐다.
황정민은 ‘쌍천만 배우’ 타이틀을 따냈다. ‘국제시장’(2014)에 이어 이번 ‘베테랑’으로 완전히 ‘흥행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2연속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연기력에 흥행성까지 갖추게 된 셈이다.
한편 두 사람은 차기작인 영화 ‘군함도’에서도 호흡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황정민이 이 작품에 출연을 긍정 검토 중이다. 두 사람이 또 한 번 멋진 호흡을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감이 치솟고 있다./joonamana@osen.co.kr
영화 '베테랑'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