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유재석의 개그가 미국에서도 통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머가 풍자에 치우친 경향이 있는 반면, 미국의 경우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에 비중을 두고 웃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와 그들이 웃음이 터지는 지점이 다를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유재석 표 유머에는 국적이 없었다. 친절과 배려를 전제로 한 특유의 유머가 빛을 발한 게 아닐까.
지난 29일 방송된 MBC 예능 '무한도전'을 통해 그의 개그가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날 방송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일명 '배달의 무도'로 꾸며졌는데 앞서 정준하는 아프리카 가봉을 찾아 감동의 음식을 배달했었다. 그에 이어 유재석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에 사는 사연 신청자에게 음식을 배달하기로 했다. 조금은 부담스럽고 미안하기도 할 이같은 상황에 그는 담담한 말투로, 그러면서도 본인만의 개그를 살리며 지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깨알 같은 개그로 파고 들며 그들에게 호감을 산 것이다.
유재석은 페이엣빌에 사는 권선영 씨의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지만 선영 씨는 어릴 때부터 미국에 살아온 탓에 '1인자' 유재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부분도 놀랄 일인데 유재석은 침착하게 "저는 한국의 코미디언"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어머니와 언니가 보낸 음식을 정성스럽게 전달했다.
지난 1983년에 태어난 선영씨는 생후 4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해군출신 미국인 아버지 아래서 18세부터 14년 간 군 복무중이다. 이날 그녀는 친부모님, 언니와 극적 상봉을 이뤄 눈물샘을 자극했다. 유재석의 차분한 진행 아래 어머니는 출산을 앞둔 딸에게 미역국을 끓여줬고 함께 식사를 하며 생전 처음으로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쓰는 언어는 달랐어도 눈빛 하나로, 말 없이 전해지는 가족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재석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유재석은 이어 한국에서 입양돼 온 어린이들이 공부를 하는 기관을 찾아 열정적인 자기소개로 사람들 앞에 섰다. 이들 역시 그를 몰랐다. 유재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친근함을 주면서 따뜻한 말투와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짧은 시간에도 아이들과 부쩍 친해진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유재석의 유머는 김밥을 만들 때 터졌다. 실수로 단무지를 넣지 않았고, 그는 당황하지 않고 김밥을 먹은 뒤 단무지를 한 입 베어물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유재석은 데뷔 초 '연예가중계' 리포터 시절 카메라 앞에서 말을 더듬기도 했고 무대 공포증을 겪기도 했을 만큼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개그맨은 아니다. 지금의 유재석이 있기까지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타인을 배려하는 겸손, 방송사고가 날 염려없는 언어 순화, 호감형 외모, 깔끔한 화술이 그를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10년 가까운 무명 생활동안 다져 올린 기술과 노하우는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 예능인으로서 국내 시청자를 넘어 세계인들에게도 계속 웃음을 줄 것만 같다./ purplish@osen.co.kr
'무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