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하이킥'에서 재미있는 연기를 해서, 함께하고 싶었다."
영화 '돼지 같은 여자' 제작보고회에서 장문일 감독은 배우 황정음을 섭외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연출 김병욱, 2009~2010)은 지금의 황정음을 있게 한 작품이다. 물론 그 강렬한 캐릭터를 벗어던지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지금 황정음은 '걸그룹 슈가 출신'도 '하이킥 정음'도 완벽히 뗀 채 오롯이 배우로 거듭났다. 최근 작품 '비밀', '킬미, 힐미'를 보면 여기엔 딱히 추가 설명이 필요 없다.
황정문 감독의 발언에 혹여 '하이킥' 속 황정음 캐릭터를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그 마음 내려놓으라. '돼지 같은 여자' 속 황정음은 '하이킥'의 그것마냥, 더럽게 암울한 현실에도 유쾌한 습성 같은 걸 붙들려 힘쓰는 어촌 처녀 재화(황정음 분)가 있긴 해도, '하이킥' 식 재미가 결핍된 이 영화는 그녀를 자꾸 더 끔찍한 오물통 속에 쳐박을 뿐이다.
사전 공개된 예고편, 메이킹 필름, 그리고 영화의 카피에 등장하는 밝은 포장지에 낚여 유쾌하고 발랄한 어촌 로맨스 버라이어티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철저한 배신감에 몸을 떨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돼지 같은 여자'는 첫사랑 잔혹사다. 표현 방식을 조금 뒤틀면, 자칫 스릴러 장르가 될 뻔 했던 영화. 오히려 스릴러는 관객들이 적절한 방어기제를 장착하고 영화를 받아들이기라도 하지, 이건 예고없이 펼쳐진 기습 공격에 더 크나큰 심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분명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졸지 않았음에도, '내가 혹시 졸았나?'를 의심케 하는 듬성하게 얽어진 내용 역시 '돼지 같은 여자'의 묘한 관람 포인트다. 갉아먹힌 스토리의 여백은 여수의 바닷 마을과 순천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대체된다. 수시로 터져나오는 시끌벅적 화려한 사운드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아름다운 영상은 '해적', '해운대'의 김영호 촬영감독과 황순욱 조명감독, 음악은 레이니썬 보컬출신 록커 정차식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밝은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은 사람보다는, 열심히 살아도 그저 녹록치 않은 현실이 영 원망스러운 사람, 남들 다 행복하게 사는 꼴이 조금은 보기 싫었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갈치가 안 잡혀 망하기 일보직전의 바닷 마을에 남아 마을 총각(이종혁) 낚겠다고 달려드는 세 여자(황정음, 최여진, 박진주)의 피 튀기는 쟁탈전을 지켜보길.
오는 9월 10일 개봉.
덧) 몸을 아낌없이 던져 연기한 세 여배우들에게 무한 박수를. / gato@osen.co.kr
'돼지 같은 여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