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방심하면 잡아먹히고야 마는 정글 같은 정치판. 비례대표 초선 의원인 그가 당 대변인으로 자리 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변호사 출신의 논리정연한 말솜씨와 여자로서의 아름다운 외모를 무기로 앞만 보고 달려온 이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부정당했을 때는 어떤 마음일까. 동지라고 여기며 따랐던 이에게 팽 당하는 절박한 심경, 또 자신이 무시했던 사람의 손을 잡아야만 하는 비참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김서형과 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지난 2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는 홍찬미(김서형 분)가 팽 당하고, 복수를 시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찬미는 당협위원장 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한 후 이에 항의하기 위해 장현성(백도현 역)을 찾아갔으나, 그에게서 온전히 내쳐졌던 것. 이에 찬미는 반청계의 문을 두드렸으나, 공천으로 거래한 친청계와 반청계의 기류로 인해 이곳에도 발을 들이지 못했다. 찬미는 박춘섭(박영규 분)의 거부 의사를 전달한 도현이 자숙하라고 하자 “지난 4년간 나는 뭐였냐. 들러리? 시키는 대로 짖는 개?”라고 물었다. 찬미는 자신에 대해 동지가 아닌 동업자라고 말하는 도현의 말에 분노했다.
이후 찬미는 딴청계 상필을 찾았다. 찬미는 상필에게 국민당에서 벌어진 공천 나눠 먹기 의혹에 대해 이야기 했다. 상필은 이 자료를 기반으로 국민당 내 친청계와 반청계의 공천 나눠 먹기 의혹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일로 인해 국민당 전체가 흔들렸다. 춘섭과 도현은 정보제공자 찬미에게 상필의 징계위원회에 참석해 그의 출당을 주장하라고 지시했다. 찬미는 “미모 앞세워 인기 얻은 여성 대변인 하나 바보 만드는 건 일도 아닌 곳”라고 압박하는 이들의 말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찬미는 출당 위기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키는 상필의 진심에 결국 마음을 굳게 먹었다. 찬미는 징계위원회에서 “나는 그냥 사람이다. 사람이 좀 사람답게, 서로 믿고 서로 사이좋게. 뒤통수 좀 안치고, 안 싸우고, 안 울리고, 그냥 그렇게 손 좀 잡고 같이 걸어가는 거. 그게 내 정치 이념이다”라고 말하는 상필에게 감동 받아 “진의원은 제보자를 신뢰한 것일 뿐, 허위사실을 유포해 당을 곤경에 처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 따라서 진의원의 징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나에 대한 징계를 하겠다면 조만간 징계위원회 열어 달라. 내가 제보한 내용이 허위사실인지 아닌지, 거기서 다시 따져보자”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찬미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온전한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일찍 성공해 화려하게만 보이던 그지만, 사람이 없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불안해하는 그의 절박함은 찬미의 선택에 집중하게 했다. 찬미는 도현만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을 끝까지 동지로 인정해주지 않는 도현의 냉정함과 무시하던 상필이 보여주는 의리 있는 모습 가운데서 무엇인가를 깨닫는 모습을 보인 것.
속물적인 근성을 숨기고, 이지적인 외모와 야무진 화법으로 인기를 끈 찬미는 그간 만만한 보좌진들을 막 대하며 국회 내 사이코로 불려 왔다. 국민들 앞에서 언제나 좋은 모습만 보이던 그는 뒤에서는 자신보다 약자인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왔기 때문. 하지만 이제 그의 껍질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출세욕에 눈이 멀어 자신이 진짜 바라고 원하던 것을 잠시 잊었던 찬미가 정글 같은 정치판을 하나씩 바로잡고 있는 상필의 진심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지, 뜨겁게 빛나던 진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을 끌었다.
‘어셈블리’는 무식해서 용감하고, 단순해서 정의로운 용접공 출신 국회의원 진상필(정재영 분)이 ‘진상남’에서 카리스마 ‘진심남’으로 탈바꿈해가는 유쾌한 성장 드라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회’의 세세한 이면과 ‘정치하는 사람들’의 사실감 넘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국 정치의 단면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jykwon@osen.co.kr
‘어셈블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