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선비’의 이야기는 대체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 전개의 대부분을 귀(이수혁 분)를 잡기 위한 비책을 찾기 위해 써왔으면서 이제와 비책을 파기하고, 자신에게 대적한 왕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오르겠다 선언한 귀의 선언 등 보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드라마를 살리는 건 오로지 이준기의 연기력, 그것 하나뿐인 것 같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극본 장현주, 연출 이성준)에서는 귀(이수혁 분)와의 대결 도중, 정신을 잃은 성열(이준기 분)을 위해 양선(이유비 분)이 자신의 피를 먹였고, 그 피를 마신 후 흡혈귀의 본능이 되살아난 성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귀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비책이라 생각했던 양선의 피는 귀가 아닌 성열과 관련이 있었다. 수호귀가 모계의 피를 취하면 귀와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어 그 힘으로 귀를 없앨 수 있게 되는 것.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양선은 성열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몸에서 나온 피를 성열에게 먹였고, 성열은 그 피를 마신 후 돌변했다.
파란 눈으로 변한 그에게 인간의 마음을 지닌 수호귀 성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짐승처럼 변한 성열은 귀와의 대결에서 놀라운 힘으로 그를 제압했고, 지하궁을 빠져나온 성열에게는 흡혈귀의 본능만이 남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양선의 피를 취해야 한다는 본능을 따라 거리로 나선 성열에게는 아직 수호귀 김성열과 흡혈귀 김성열의 모습이 공존했다.
자신의 모습에 겁을 먹고 돌을 던지는 이에게 다가서는 성열의 머릿속에서는 “역겨운 것들, 너의 힘을 보여줘라”고 외치는 흡혈귀와 “저들도 희생자일 뿐이다”라며 그의 행동을 저지하는 수호귀 김성열의 상반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의 허상과 싸우던 성열은 그 실체와 마주했다. 수호귀 김성열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 잊은 것이냐, 이대로 귀와 같은 흡혈귀가 되려 하는 것이냐”며 성열의 본능을 잠재시키려 했고, 흡혈귀 김성열은 연신 “인간 김성열은 이미 120년 전에 죽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라”는 말로 그를 자극했다. 이어 “너는 인간과 다르다, 아니 훨씬 더 월등하지. 네가 그 끈만 놓는다면 귀도 너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허니 어서 가서 그 아이의 피를 취해라. 그리고 더 강해져라. 이 세상을 너의 발아래에 두어라”라며 성열을 혼란스럽게 했다. 성열은 흡혈귀 김성열을 없애려 했지만 이미 그의 안에선 본능이 더 커져버렸던 것일까. 갈등하던 성열은 결국 양선을 찾아 나섰다. 양선의 앞에 선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낯설었다. 양선을 알아보지 못한 채 피를 취하려 다가서던 성열은 결국 백종사(한정수 분)의 칼을 맞았고, 그런 그에게 다가가 안아주는 양선의 손길에 다시 인간 김성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양선의 피를 마신 후 돌변한 이준기의 연기는 놀라웠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두 가지의 목소리에 혼란스러워하며 눈빛과 표정을 바꾸는 그의 모습에서는 올해 초 방영된 MBC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1인 7역을 연기했던 지성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수호귀 김성열과 흡혈귀 김성열로 변한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열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한 눈빛과 말투의 수호귀 김성열과는 달리,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긴 도포를 입은 채 입가의 비열한 웃음으로 본능을 자극하는 눈빛을 희번덕거리는 흡혈귀 김성열은 그 모습만으로도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수호귀와 흡혈귀 사이에서 불안한 표정과 몸짓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열의 모습에 이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로지 그가 가진 연기력뿐이었다.
한편 '밤을 걷는 선비'는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은 뱀파이어 선비 성열이 절대 악에게 맞설 비책이 담긴 정현세자비망록을 찾으며 얽힌 남장책쾌 양선과 펼치는 목숨 담보 러브스토리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 / nim0821@osen.co.kr
‘밤을 걷는 선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