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만안문 통과하게 될 이준익 최고의 익스트림 사극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9.07 06: 4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재벌조차 쉽게 컨트롤되지 않는 게 두 가지 있다고 한다. 바로 종잡을 수 없는 마음 속 번뇌와 자식이다. 이성적 사고를 하게 하는 전두엽과 쾌락, 행복감을 관장하는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의 끊임없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통제하려 할수록 엇나가는 자식은 부모 DNA를 물려받은 또 다른 자아이자 객체라는 점에서 더 속이 끓고 애잔한 존재다.
 이준익 감독의 10번째 연출 영화 ‘사도’(타이거픽쳐스 제작)는 서로를 갈구하고 내 편이 되길 원했지만 결국 애증과 마음 속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파국을 맞은 조선 500년을 통틀어 가장 슬픈 왕과 아들을 그린 비련의 드라마다. 천한 무수리 아들에 이복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영조(송강호)는 외아들(유아인)만큼은 지덕체를 겸비해 누구에게도 트집잡히지 않는 성군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아들이 읽을 교재를 밤새 친히 집필하고 시강헌을 통해 아낌없이 뒷바라지하지만 정작 아들은 손오공과 칼싸움, 강아지 그림에 흥미를 보일 뿐 공자님 말씀과 경국대전엔 도통 관심이 없다. SKY에 진학해 보란 듯 자립하길 바라지만 허황된 꿈을 좇아 자퇴하겠다는 철부지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요즘 부모의 타들어가는 조바심이랄까.

 대리청정 기회조차 살리지 못한 사도에게 실망한 영조는 결국 “내가 이런 걸 자식이라고. 나한테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라며 대놓고 멸시한다. 무안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껌뻑이는 눈과 발목에 잘못 묶인 대님은 무슨 죄란 말인가. 아버지의 경고 누적과 치솟는 분노 게이지에 낙담한 아들은 인정 욕구 불만과 자괴감에 울화병을 앓게 된다. 죽은 자식 취급한다며 무덤을 만들어 관에 들어가 누워있고 문안 인사는커녕 거슬리는 관료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며 궁을 피로 물들여가는 세자.
 이쯤 되면 누구 하나 사라져야 치킨 게임이 종료되는 상황. 결국 영조는 자신을 죽이려했다는 이유로 아들에게 자결을 명한다. 하지만 세자가 역모에 가담해 죽는다면 왕권마저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해 뒤주에 가둬 자연사하게 방치한다. ‘사도’는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에서 숱하게 소비된 사도세자의 죽음과 주변 정황에 현미경을 들이댄 최초의 ‘각론’ 영화다.
 뒤주에 아들을 가둔 뒤 못을 내리치는 영조의 처연한 표정부터 사도가 땡볕 아래서 자신의 오줌을 받아먹고 무릎조차 펴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간 8일간의 기록이 125분에 포개졌다. 마치 죽음의 비밀을 담은 압축파일 폴더처럼 뒤주에 갇힌 여덟째날까지 순차적으로 분류된 각각의 시퀀스는 부자의 행복했던 과거와 뒤틀린 현재를 쉼 없이 오가며 인과관계를 채워낸다.
 ‘왕의 남자’(05)로 첫 사극 1000만 시대를 연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 이후 4년 만의 역사극 ‘사도’로 자신의 문턱을 또 한 번 넘어섰다. 송강호처럼 뜨거운 연기를 차갑고 드라이하게 표현하는 배우와 과연 케미가 잘 맞을까 의문이었지만 괜한 기우였다. 송강호는 완벽에 가깝게 영조에 빙의된 듯한 호연을 펼쳤고, 이준익의 절제력 있는 연출을 만나 한결 빛났다.
 매 작품마다 뭔가를 더 보여주려 애쓰기보다 다음 장면을 궁금하고 더 집중하게 만드는 송강호 특유의 점층적 내려놓는 연기와 유려한 리듬감, 템포가 이번에도 잘 맞물렸다는 느낌이다. 전체 속에서 부분을 해석하는 부감 마인드와 신 바이 신을 감독 못잖게 연구 고민한 흔적일 것이다. 예컨대 신하들 앞에서 대리청정하는 아들과 국방 정책을 놓고 맞서다가 “너 함경도 가봤어?”라고 묻거나 단 둘이 있을 때 “내가 너의 아집을 모르는 줄 아느냐”며 몰아세우는 장면에서의 디테일과 템포는 그가 왜 최고 개런티의 배우인지 실감하게 해준다.
 송강호에게 잡아먹힐 거라고 예상한 유아인도 이제 마음 편히 군 입대를 준비해도 될 만큼 전혀 밀리지 않았다. 송강호가 까마득한 후배에게 골 넣으라고 센터링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좌우 미드필더처럼 대등한 공수 기여도를 보여줬다. 아비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떨림과 공포부터 몇 차례 거듭되는 양위파동과 석고대죄, 점점 복수심으로 불타는 눈빛과 광기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정돈된 에너지로 객석에 오롯이 전달된 건 감독의 정확한 디렉션과 이를 체화해낸 유아인의 공이다.
 특히 과녁 대신 하늘로 활을 쏜 뒤 “허공을 가르는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냐” 같은 주인공의 헛헛한 심경을 대변하는 대사를 읊조릴 때의 표정 연기는 ‘하늘과 바다’(09)에 출연한 그 유아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베테랑’에 이어 최단 기간 천만 배우로 기록될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괄목상대하는 80년대 출생 배우 중 으뜸인 건 확실해 보인다.
 노 개런티로 정조 역에 특별 출연한 소지섭의 엔딩 부채춤 장면은 수용미학이 어떨지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고 할아버지 영조의 슬픈 진심마저 알게 된 그가 어머니 혜경궁(문근영)의 회갑연을 열어주며 이야기를 닫게 되는데 과연 제작진 의도대로 비장미로 해석될지, 과잉으로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12세 관람가로 16일 개봉./bskim0129@gmail.com
'사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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