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선비’, 그래도 이준기는 남았다 [종영②]
OSEN 박꽃님 기자
발행 2015.09.11 07: 39

밤선비님은 가고, 이준기는 남았다. MBC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는 이준기의, 이준기에 의한, 이준기를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10일 종영한 ‘밤을 걷는 선비’는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퓨전 사극을 표방하며,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은 뱀파이어 선비 성열(이준기 분)이 절대 악에게 맞설 비책이 담긴 정현세자비망록을 찾으면서 얽힌 남장책쾌 양선(이유비 분)과 펼치는 목숨 담보 러브스토리를 그렸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원작의 인기와 더불어 원작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캐스팅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밤을 걷는 선비’의 시작은 화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부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과 원작을 뛰어 넘기는커녕 협소해진 세계관과 평이해진 사건들이 이어지는 드라마의 구조는 보는 이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밤을 걷는 선비’가 시청자들의 높았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아쉬움을 선사하던 와중에도 캐릭터의 중심을 잃지 않고 드라마를 이끌었던 건 바로 이준기였다. 그는 드라마 초반부터 ‘조선 시대에 흡혈귀가 존재했다’는 독특한 설정을 완벽하게 제 것으로 만들어냈고,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사는 뱀파이어 선비 성열에 완벽 빙의한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랑하는 이를 귀(이수혁 분)의 손에 잃은 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호귀가 된 성열은 귀를 없애고 자신 역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숙원이라 살아왔다. 그래서 이준기는 양선을 만나기 전까진 복수 이외에는 모든 것에 무심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차가운 성열을 연기했고, 양선과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며 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한 눈빛과 말투, 표정으로 표현했다. 유난히도 우여곡절과 위기가 많았던 이 커플의 이야기 속에서 이준기는 양선을 향한 애틋한 연정과 절절하면서도 달달한 로맨스를 그려내 여심을 사로잡았다.

또한 이준기는 드라마 안에서 뱀파이어의 본능과 인간 사이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역대급 자아분열신’을 탄생시켰다. 그는 선한 눈빛과 말투를 가진 수호귀 김성열과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긴 도포를 입고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본능을 자극하는 눈빛을 희번덕거리는 흡혈귀 김성열, 그리고 수호귀와 흡혈귀 사이에서 불안한 표정과 몸짓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열의 모습을 그려내며 절정의 연기력을 보였다. 역할에 따라 안면근육과 목소리, 대사 호흡 등을 달리하며 1인 3역을 선보인 이준기의 연기력은 흠잡을 곳 하나 없었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드라마나 영화상에서 이미 흔한 소재가 됐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기에 그것을 우스꽝스럽지 않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첫 방송 당시 이준기는 뱀파이어로 변신하는 모습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표현력으로 그려냈고, 강렬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뱀파이어라는 캐릭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성열이라는 인물은 이준기를 만나 드라마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됐다.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제 몫을 해내는 배우 이준기는 그렇게 드라마의 성과와는 별개로 ‘갓준기’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명품 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해냈다. / nim0821@osen.co.kr
‘밤을 걷는 선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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