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저음과 차분한 말투, 진중하면서도 선 굵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는 배우. 김상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도무지 예능 프로그램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가 예능 프로그램 MC를 맡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랫동안 진행해 온 탓일까, 방송 초반 김상중은 진지하고 딱딱한 말투로 함께 출연한 서경석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상중은 이내 긴장을 풀고 무거운 이미지 뒤에 숨겨졌던 진솔하고 소탈한 매력을 발산하며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진행으로 성공적인 예능 MC 신고식을 치렀다.
지난 10일 오후 첫 방송된 O tvN '어쩌다 어른‘에서는 첫 예능 MC에 도전한 김상중과 남희석, 서경석, 양재진 등이 첫 회 게스트로 등장한 배우 김혜은과 함께 ’어쩌다 어른이 되었을 때‘를 주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상중은 대부분의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른임을 부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상중은 20년 전, TV에 처음 출연했을 때 함께했던 선배 연기자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던 그가 이제는 어느 순간 촬영장에서 선배 서열 1순위가 되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위치가 되었다며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현재를 이야기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됐나보다”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소리는 싫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김상중은 김혜은이 자신을 부르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에도 서운함을 표했다. 평소 진중한 이미지 때문에 오빠라고 부르기 힘들다는 김혜은의 말에 김상중은 “사람들이 날 보며 볼매라고 한다”며 “하지만 난 볼매가 아니고 볼애다”라는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볼애의 뜻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그는 “볼수록 애 같다”고 설명했고, 어디서 웃어야할지 모를 썰렁한 아저씨 개그는 의외의 웃음을 유발하며 김상중의 허술한 매력을 엿보게 했다.
이어 김상중은 중년 아저씨다운 능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다고 언제 느꼈는지 라는 주제에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김상중은 녹화 전 준비했다는 고추를 꺼내 들었다. 주제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소품의 등장에 의아해하는 모두의 앞에서 김상중은 “거기에 털이 나기 시작했을 때”라며 평소 그의 이미지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입담으로 보는 이들을 폭소케 했다. 이어지는 MC들의 2차 성징에 관한 이야기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는 김상중의 모습에 이미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그가 고등학생들 앞에서 카리스마를 실추했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평소 오토바이 타는 걸 즐긴다는 김상중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헬멧도 쓰지 않고 위험스럽게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보고 어른으로서 한 마디 해줘야 할 것 같아 훈계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그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김상중은 “‘진짜 오토바이를 타는 어른이 어떤 건지 보여 주겠다’며 바뀐 신호를 받아 출발하려고 하는데 시동을 꺼트렸다”고 밝히는 그의 입담에 모두는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송이 후반으로 향해갈수록 김상중은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혹은 시사교양프로그램의 MC가 아닌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아버지, 또는 옆집 아저씨, 썰렁한 농담으로 부하 직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부장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견고하게 쌓여 있던 중후한 이미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김상중의 의외의 매력에 시청자들은 이미 그를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진정한 예능인으로 거듭날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매력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지, 자꾸만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김상중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한편 '어쩌다 어른'은 김상중, 남희석, 서경석, 양재진까지 평균연령 45.5세인 4명의 MC들이 어른들의 고민과 행복, 진짜 사는 재미를 두고 거침없는 대화를 나누는 '39금 토크쇼'다.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방송. / nim0821@osen.co.kr
‘어쩌다 어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