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사도' 유아인, 랑데부 만루홈런 터진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9.15 17: 1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해외 휴가나 출장 갈 때마다 튜브 고추장 보다 먼저 살뜰하게 챙기는 물건이 바로 만능 전압기다. 홍콩의 3구 콘센트나 일본의 110볼트를 만나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모습을 바꿔가며 노트북과 휴대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기특한 녀석.
요즘 유아인의 스크린 질주를 보면 이 요긴한 프리 볼트 전압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 추억을 소환해주는 ‘도란스’라 불렸던 기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야기나 캐릭터 플레이가 펼쳐지든 거기에 맞게 자신을 변주, 연기해내는 모습이 빙의 수준을 넘어 과연 저 스펙트럼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완득이’ 때 이미 낭중지추 급 실력이 한 번 검증된 적이 있지만 올 여름 아드레날린을 자극한 ‘베테랑’에 이어 추석 개봉작 ‘사도’에서까지 펄펄 날아오를 것을 예측한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도’의 한 후반작업 관계자는 “송강호에 밀리지 않고 배역에 빠져든 유아인을 보면서 대박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86년생 유아인이 또래에 비해 그릇이 다른 배우인 건 이준익 감독과의 거듭된 인연에서도 빛난다. 유아인은 지난 2007년 이준익이 연출, 제작한 ‘즐거운 인생’에 출연할 뻔했다가 막판에 ‘까인’ 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가창 실력을 볼 겸 노래방으로 우르르 몰려 갔는데 이 자리에서 제작진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 배역은 장근석에게 돌아갔고 유아인은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로 재회한 유아인에게 7년 전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유감을 표했지만 “제 노래 실력이 별로였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아니냐”며 오히려 아버지뻘 감독을 다독였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유아인은 남들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은 독기와 실력을 키우는 것뿐이라고 다짐했을 테고 오매불망 칼을 갈았던 것 같다.
드라마 ‘패션왕’ 때의 유명한 일화도 있다. 당시 소속사 스타K는 유아인의 회당 출연료를 올릴 수 있는 적기라 생각해 제작사와 담판을 끝냈는데 이를 안 유아인 때문에 다시 금액을 낮추는 소동을 벌여야 했다. 유아인이 “그렇게 많이 받으면 중압감 때문에 연기에 몰두하기 힘들다”고 버틴 것이다. 매니저는 “네 이미지만 생각하지 말고 회사도 좀 생각해 달라”고 설득했지만 끝내 유아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소속사를 내세워 출연료를 한 푼이라도 더 올려 받고, 상대배우 보다 더 주목받고 싶은 게 상업 배우들의 본심일 텐데, 유아인은 여전히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데 애쓰고 있다. 한때 장동건이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 스스로 광고 재계약을 포기해 업계의 귀감이 됐는데 훨씬 어린 유아인이 벌써부터 이런 의미 있는 ‘디마케팅’에 관심을 보여 예사롭지 않은 연기자란 걸 알게 됐다.
배우는 성격과 행실이 나빠도 연기만 잘 하면 된다는 사람이 있지만, 아직 한국 정서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인이 아닌 유명인이라도 그가 도덕적으로 우월하길 바라는 대중들의 이중 잣대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실제로 보면 예뻐?” 만큼 “진짜 성격은 어때?”라는 질문이 줄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착해도 얼마든지 연기 잘 할 수 있다는 걸 유아인이 보여줘 반갑다./bskim0129@gmail.com 
'사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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