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모태솔로..CC(캠퍼스커플)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대학에 가면 여자 친구도 사귀고, 동아리도 가입하고 싶단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을 신경 쓰며 머리를 긁적이는, 여진구는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다. 스크린에서는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도 밀리지 않는 괴물 같은 존재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면서, 첫사랑을 묻는 질문에는 수줍은 듯 웃으며 소년의 미소를 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어른이 돼 있다.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두꺼운 목소리와 선이 굵은 입술로 척척 내놓는 답변들은 논리적인 데다가, 차분하고 정돈 돼있어 나이를 의심케 할 정도. 쑥 자란 키와 떡 벌어진 덩치도 이제 꽤나 듬직하다. 이래서 ‘진구 오빠’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
특히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여진구를 소년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들이 발견된다. 이는 그가 굵직한 주연을 맡아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화이’(2013)에서는 5명의 범죄자를 아버지로 둔 어두운 소년을 연기했고, ‘내 심장을 쏴라’(2015)에서는 어렸을 때 상처로 정신병을 앓는 소년을 그려냈다. TV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2015)에서도 어두운 감성을 지닌 뱀파이어를 소화했다.
우리 사회는 아역 배우들에게 밝고 순수하고, 쾌활하기를 요구한다. 이에 대부분의 아역들이 이 같은 노선을 걷게 되고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이른바 ‘연기 변신’을 하게 되는데, 여진구가 걸어온 길은 그것과는 노선을 달리한다. 이미 깊은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크한 캐릭터들을 놀라운 연기력으로 소화해내며 ‘소년’의 이미지를 벗어냈음이다.
‘진구 오빠’의 소년 같은 이미지는 이번 영화 ‘서부전선’을 통해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농사 짓다 끌려온 남한군과 탱크는 책으로만 배운 북한군이 전쟁의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위험천만한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그린 작품. 여진구는 극중 북한군 소년병 ‘영광’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최근 OSEN과 만나 “전작에서는 어두운 부분이 많은 역할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순수하고 현실적인 소년 같은 캐릭터를 맡게 됐다. 저의 실제 모습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영화처럼, 여진구는 인터뷰에서도 소년과 ‘오빠’를 넘나들었다. ‘진짜’ 여진구와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전한다.
- 시사회를 마쳤다. 영화는 어떻게 봤나?
“현장에서 확인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온 거 같아서 놀라면서 봤어요. 처음 보여드리는 모습이어서 제 모습을 보며 이렇게 해도 될까 싶었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좋게 나온 거 같아요.”
- 북한군 소년병 캐릭터, 연기하며 신경 쓴 부분은?
“소년병이 어쨌든 학생이다 보니 저랑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신기하면 신기한대로 당황하면 당황한대로 했어요. 처음 접하는 사실들과 직면했을 때 반응하는 모습들이 평상시 모습과 비슷했죠.”
- 뛰고 넘어지고, 액션이 많았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못 느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이 다칠 수 있는 현장이어서 조심했죠.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 현장이어서 안전을 생각하면서 촬영을 했다. 욕심부리다가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요.”
- 극중 탱크 운전을 하는데, 실제로 배웠나
“탱크를 직접 제작을 하셔가지고 실제 탱크 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전을 했었어요. 실제 간단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실제로 밀면 가고 땡기면 서고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 촬영 중 손가락 부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겨울에 촬영을 했어요. 쫓고 쫓기다가 탱크 몰고 도망가고 그런 과정에서 다쳤어요. 손이 얼어있는 상태여서 아픈 것을 모르고 있다가 쇼크가 왔다고 하더고요. 주변에 계신 분들이 더 많이 놀랐던 거 같아요.. 병원갔다가 현장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죠.”
- 설경구와 연기 호흡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많이 배웠을 거 같은데
“사실 선배님들이 입으로 설명해주시진 않아요. 실질적인 진지한 이야기를 해주시지는 않고 현장에서 같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워지는 것 같아요. 설경구 선배님들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현장에 오면 캐릭터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연구를 해도 적응하려면 기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설경구 선배님은 촬영장에 오실 때부터 이미 ‘남복’(극중 캐릭터)이 되어 계시더라고요. 현장에서의 몰입력이 대단하세요. 그래서 함께 할 때 걱정이 없죠. 선배님 하는 것에 따라 맞춰 가면 될 거 같다는 느낌. 보험 같은 느낌이었어요.”
- 극중 설경구를 때리거나, 욕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런 연기가 생각보다 걱정이 되더라고요. 촬영 전에 막막한 것도 있었죠. 욕하는 것은 대사니까 괜찮은데 때려야하는 장면은 화를 내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선배님 처음 뵙고서는 걱정들이 사라졌어요. 정말 편하게 해주셨어요.”
- 현장 분위기가 좋았을 거 같은데
“현장에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스태프들 모여서 모니터링을 할 때 정말 재밌게 봤고 관객들도 웃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벌에 쏘인 분장했을 때 정말 많이 웃었어요.”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joonamana@osen.co.kr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