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이야기를 또 한 번 듣는 것만큼 지루하고 진부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반전’을 기대할 수 없는, 모두가 결과를 알고 있는 스토리. 그 안에서 ‘재미’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테다. 그런데 영화 ‘사도’는 철저한 고증으로 역사를 정통하면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몰입감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125분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묵직하게 이끌어간다.
비결은 시간의 병렬연결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 8일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과거에 있었던 주요한 사건들이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결들이 꽤나 흥미롭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미리 보여주고 왜 이런 사단이 벌어졌는가를 귀납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이 영화가 주는 재미의 핵심 포인트다.
영화의 틀을 이루는 플래시백 기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도 효과를 톡톡히 해낸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법으로 ‘디졸브’가 사용되는데, 인물의 클로즈업 샷이 현재의 모습과 과거로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촌스러울 수 있는 설명을 세련되게 대신한다.
사도세자를 연기하는 유아인의 얼굴에는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가 묘하게 디졸브된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연기로 두 캐릭터의 각기 다른 매력을 표현해내지만, 뭔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사도세자가 권력가의 아들이고, 조태오가 재력가의 아들이라는 것, 정신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공통점 정도의 미시적인 차원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유아인 화’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절로 풍겨져 나오는 반항기와 한 번 결심하면 놓치지 않을 것 같은 독기와 ‘깡다구’. 이 같은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불안한 분위기와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특유의 감성은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보적인 색깔이다. 그가 내는 이 같은 색깔이 영화 속 캐릭터와 만나 어우러지면서 빛을 내고 있는 모양새다.
성장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같은 성장을 이루며 충무로의 ‘푸른 별’로 빛을 발하는 중이다. 영화 ‘베테랑’을 통해 천만 배우 반열에 이름을 올렸고, ‘사도’를 통해서는 집중도 높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내며 연기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의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 특히나 인상적. 황정민, 송강호, 김희애, 김윤석 등의 내로라하는 배우들과의 대립과 호흡에서도 절대 밀리는 일이 없다. 그와 함께 연기를 하고난 배우들은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엄지 척’이다.
유아인이 앞으로 그려나갈 그림들이 더욱 무궁무진하다./ joonaman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