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암살’과 ‘베테랑’으로 대표된 올 여름 영화계의 또 다른 특징은 실종에 가까운 여배우들의 증발 현상이었다. 물론 ‘암살’의 주요 플롯을 맡은 전지현과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한 진경이 나름 분투했지만 여배우 영화로 분류되기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게 사실.
공교롭게 CJ와 쇼박스, NEW의 투자 팀장들이 모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메이저 투자 배급사의 방학용 텐트 폴 영화는 남탕 영화 일색이다. 아무래도 코어 관객층이 여성인 만큼 1차적으로 그들을 겨냥해야 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투자되는 A급 배우 군이 여자 보다 남자가 압도적인 게 주된 원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 여름 엄정화 한효주가 거둔 활약과 의미에 다시 한 번 밑줄 그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두 여배우 모두 자신이 주연한 작품의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자본에 책임졌을 뿐 아니라 치열한 여름 시장에서 기죽지 않고 독하게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 막바지였던 지난 달 13일, 20일 각각 개봉한 ‘미쓰 와이프’와 ‘뷰티 인사이드’는 100만, 200만 고지를 찍으며 9월 종영 수순을 밟고 있다. 천만 영화가 두 편이나 나온 마당에 외견상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스코어지만 두 영화가 겪은 내부 사정을 살펴보면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먼저 메가박스 엠플러스가 배급한 ‘미쓰 와이프’는 개봉 내내 CGV와 롯데시네마에서 온관으로 단 한 차례 상영되지 못했다. 예매와 현매 관객이 몰리는 ‘베테랑’ ‘암살’을 한 관이라도 더 틀기 위해 이 영화를 비롯해 여러 영화들이 교차상영 신세를 당한 것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예견한 걸까. 엄정화는 개봉 전 인터뷰에서 “우린 체급이 다른 영화인데”라며 걱정했고 이 근심은 여지없이 현실로 드러났다.
치열한 여름 시장을 피해 개봉했다면 두 배 이상 관객을 모았을 것이라는 관전평도 있지만 인파가 붐빌 때 개봉해 오히려 반사이익을 봤다는 정반대의 의견도 나온다. 본전을 넘겼고 드라마틱한 수익을 내진 못 했지만 ‘미쓰 와이프’는 좋은 시나리오와 믿고 보는 엄정화가 알맞은 예산 내에서 이번에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선전했다는 평가다. 천만 영화도 좋지만 300만 영화 세 편 나오는 게 한국 영화를 더욱 튼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뷰티 인사이드’에서 전 후반 풀가동한 한효주도 20대 여배우 중 단연 톱클래스임을 또 한 번 입증해냈다.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가 힘을 잃어 다소 아쉬웠지만 한효주의 집중력과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용해력은 또래 중 최고였다. 현재 20대 여배우 중 소위 투자되는 배우는 한효주를 비롯해 문채원 박신혜 박보영 등이 꼽히는데 한효주가 ‘뷰티 인사이드’를 통해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극장이 없는 배급사다 보니 NEW의 ‘뷰티 인사이드’ 역시 메이저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를 받았고 관객이 드문 오전 상영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오후와 퇴근 후에 일정 정도 상영관이 유지됐더라면 훨씬 더 많은 관객과 만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SNS 덕분에 잘 만든 영화는 알아서 관객이 몰리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보이지 않는 ‘게임의 법칙’이 수면 아래에서 암암리에 적용되고 있다는 항변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은 여전히 차갑고 앞으로 더 냉랭해질 것이다. 엄정화 한효주가 심판도 없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 남 탓하지 않고 자력으로 지금의 성과를 이룬 것 같아 다행이고 흐뭇하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차기작을 위한 발판을 잘 구축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여배우들의 자존심까지 올려줬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