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도 전국을 농구 신드롬에 빠지게 만든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최고의 스포츠 드라마로 회자되는 ‘마지막 승부’다. 그리고 이 드라마 속 주인공만큼이나 화려하면서도 외로운 선수 생활을 보낸 이가 있다. 현재는 ‘예능 공룡’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방송인으로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서장훈이다.
서장훈은 지난 21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500인’에 메인 토커로 출연했다. 이 날 그는 그간의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농구 선수로서, 또한 예능인으로서의 속내를 고백했다. 특히 ‘국보급 센터’라고 불리며 코트를 뛰어다니던 선수 시절의 부담감을 털어놓은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MC 김제동은 서장훈의 20년 남짓한 선수 생활에 대해 “행복하냐”는 질문으로 토크를 시작했다. 이 때 한참을 망설였던 서장훈의 대답은 “37~38살 때까지는 행복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였다. 나중에 은퇴하고 행복하기 살기 위해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하며 숨 가쁘게 달려오는 바람에 진짜 행복을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것.
그러던 서장훈이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후배 선수의 모습이었다. 자신보다 연봉도 적고 모아둔 돈도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후배를 보며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이 결코 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20대 당시에 꿈꿨던 그림이랑 현재를 비교한다면 전혀 다르다”라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또한 서장훈은 결벽증에 가까운 깔끔한 성격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밖에서 나와 접촉한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내겠다는 결연한 자세로 한다는 샤워, 한 방향으로 각 잡아서 정리한 물건들의 위치, 그의 등번호였던 ‘11’ 만큼 확인하는 문단속 등 보기 드문 그의 깔끔함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이는 그가 강자가 된 이후 생긴 습관. 그는 “농구를 못하고 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서웠다. 늘 이기고 강하고 남들이 할 수 없는 모습을 해내는 것을 은퇴하는 날까지 보여주고 싶었는데,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지 않냐. 그런데 그 꺾임마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징크스에 집착하게 됐다”라며 결벽증이 생긴 계기를 밝혔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합과 연관 지으며 고되게 살아왔던 선수 생활의 흔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어 그는 “저는 즐기란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진정으로 자기 일에 올인하지 않고 성과를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즐겨서는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낼 수 없다”라며 “저는 단 한 번도 즐겨본 적이 없었다. 농구를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승부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즐긴다고 생각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어느 덧 서장훈이라는 사람은 대중에게 농구 선수라기보다 방송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방송을 통해 보인 그의 모습은 스스로 여전히 농구 선수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있으며, ‘농구’를 빼놓고는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뼛속까지 스포츠인 그대로였다.
역대 득점 1위, 역대 리바운드 1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던 그의 이면에는 목뼈가 나가고 코뼈가 으스러질 만큼의 노력이 있었다. 그랬던 서장훈이 이제는 방송인으로서 새 도전을 펼치고 있다. 즐기면서는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번 도전에도 결코 마음 편히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을 터. 언제, 어느 위치에서도 안주하지 않는 그의 책임감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예능계에서 펼칠 그의 활약을 기대하는 바이다. / jsy901104@osen.co.kr
‘힐링캠프’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