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하면 떠오르는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 있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같은 포맷으로 방송돼 온 ‘런닝맨’이나 ‘정글의 법칙’이 전부일 테다. 그만큼 현재의 SBS 예능은 침체된 분위기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명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긴 한데,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다. 파일럿 당시에는 호평을 받았던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된 뒤에는 힘을 못 쓰고 폐지 수순을 밟기도 했다.
설 연휴 파일럿으로 방송됐던 ‘아빠를 부탁해’가 큰 화제 속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때까지만 해도 SBS의 2015년은 밝을 것이라 예상됐다. 서먹했던 아빠와 딸이 소통을 하면서 가까워지는 포맷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시청률 또한 만족스러워 SBS 예능을 살릴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
하지만 잦은 방송 시간 변경과 동 시간대 방송되는 경쟁 프로그램에 밀려 ‘아빠를 부탁해’는 전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이덕화 이지현, 박준철 박세리 부녀 등 새 가족을 투입했지만 이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썸남썸녀’도 ‘흥언니’ 채정안의 재발견으로 파일럿 당시 호평을 받은 프로그램이지만 정규 편성 이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채 쓸쓸히 종영됐다. 류시원의 5년만 지상파 복귀 예능으로 야심 차게 시작된 ‘질주본능 더 레이서’는 개편에 들어간 ‘스타킹’ 자리에 편성됐지만, 강력한 상대 프로그램에 치여 아주 조용히 레이스를 치르고 있다.
SBS의 효자 예능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런닝맨’은 오랜 시간 방송돼 온 탓에 어떤 미션을 부여해도 언젠가 봤던 것 같은 느낌의 식상함을 지울 수가 없다. 시청률 역시 예전만 못한 상황. 여기에 게스트 홍보 방송이라는 오명까지 떠안은 채 아쉬운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SBS는 반등의 기회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백종원을 내세운 ‘3대천왕’을 금요일 심야 시간대에 배치, 백종원 마법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불타는 청춘’은 화요일 심야 시간대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공개 토크쇼로 포맷 변경을 한 ‘힐링캠프’는 김제동의 편안한 진행, 499인의 MC와 함께 하는 스타들의 공감 토크로 담백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또 지난 4월 말 정규 편성된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는 회를 거듭할수록 감동과 웃음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탄탄한 구성 속에 풀어내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고 있다. 22주 연속 동시간대 1위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백년손님’, 벌써 21번째 생존 여행기를 보여주고 있는 ‘정글의 법칙’처럼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SBS는 단순히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소재나 악마의 편집 없이도 잘만 만든다면 착한 예능도 성공 가능성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시시각각 너무나 빠르게 변모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마냥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앞에 서서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는 선구안과 장기적인 안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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