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도 꽃은 핀다. 아픔 속에 피어난 꽃은 더욱 아름답기 마련. 영화 ‘서부전선’에 핀 웃음꽃과 휴머니즘은 그 자체만으로도 쏠쏠한 재미와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개그콘서트’ 뺨치는 코믹한 장면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민족이 겪은 분단과 전쟁의 아픔이 훅 치고 들어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웃고 울기 바쁘다. 비극 속 피어난 희극을 통해 만들어진 메시지도 무겁지 않다.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하는 일이 사실은 쉽지 않다.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시나리오가 일단 바탕이 돼야 하고 몰입을 돕는 배우들의 열연이 있어야한다. ‘서부전선’ 속 주연 배우 설경구와 여진구는 개그 콤비처럼 ‘빵 터지는’ 장면을 쏟아내다가 관객이 코믹에 빠져들었을 때 쯤, 전쟁의 참상으로 가슴을 쓰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갑자기 웃겼다 진지해지거나, 애써 웃음과 눈물을 짜내게 하려는 촌스러운 노력은 않는다.
영화는 농사짓다 끌려온 남한군과 탱크는 책으로만 배운 북한군이 전쟁의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위험천만한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그린 작품.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까지 비밀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남한군 쫄병 ‘남복(설경구)’과 우연히 비밀문서를 손에 쥐게 된 북한군 쫄병 ‘영광(여진구)’이 서부전선에서 맞닥뜨리게 되면서 각자 집으로 무사귀환 하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다.
대열에서 이탈한 두 남북 병사가 서로 총구를 겨누다가 동병상련의 감정을 공유하고 급기야 연민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스토리. 전쟁 장면을 세세하고 진지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전투기의 포격이 날아들고 트럭이 넘어가는 장면 등은 꽤나 실감나고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설경구와 여진구의 코믹한 호흡도 배꼽을 잡게 하는 명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 함께 티격태격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관전포인트 중 하나. 그러다가 정이 쌓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후반부를 뭉클하게 적신다. 한 바탕 웃다가 맞이하는 뭉클함은 감정을 배로 이끌어내기도.
무시무시한 연기력을 갖춘 두 배우의 명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설경구 여진구의 ‘케미’ 덕분에 영화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전쟁에 강제 동원된 늦깎이 아빠 ‘남복’을 연기하는 설경구는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채 가족의 곁을 떠나와야 했던 아픔을 내면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거칠면서 웃긴 특유의 코믹연기로 시선을 잡아끈다. 개그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바른생활 청년 여진구도 ‘영광’을 맛깔나게 소화해낸다. 선배 배우인 설경구의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하고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배꼽잡는 장면들을 대거 연출해낸다. 가족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여진구 특유의 감성이 제대로 살아나면서 깊은 임팩트를 준다.
영화는 결과적으로 어떤 전쟁에도 해피엔딩은 없다고, 승자도 패자도 행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웃음과 감동 교훈까지. ‘서부전선’은 명절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다./joonamana@osen.co.kr
영화 '서부전선'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