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출연이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단 2회 출연만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만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이토록 진한 아쉬움을 남긴 배우는 바로 이원종. 그는 지난 24일 방송된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장사의神-객주2015'(극본 정성희∙이한호, 연출 김종선, 이하 ‘객주’)에서 길소개(유오성 분)의 아버지이자 ‘천가객주’의 객주 천오수(김승수 분)와 의형제를 맺은 차인 행수 길상문 역을 맡아 맹활약을 펼쳤다.
상도를 철썩 같이 지키는 천오수와 달리 길상문은 다소 편법을 쓰더라도 큰돈을 벌어 ‘천가객주’를 육의전 한복판에 올리고, 자신의 아들을 비롯해 동료들을 장돌뱅이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하는 인물. 하지만 육의전이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나라의 수요품을 조달하는 상점이라는 사실에 천오수는 이를 반대해왔고, 길상문은 육의전에 들어가기 위한 뇌물 마련을 위해 천오수 몰래 환전객주(고리대금업자) 김학준(김학철 분)에게 빚을 졌다. 이 일은 결국 길상문의 발목을 잡았다.
당초 ‘천가객주’를 헐값에 인수하고자 음모를 꾸미던 김학준은 길상문이 돈을 갚지 못하자 “천가객주를 넘길 텐가, 아니면 아편을 한양까지 가져가 상환 기일을 연장 받을 텐가”라며 비정한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길상문은 어쩔 수 없이 아편 밀매를 택했고, 이내 그 사실은 청나라 군사에 의해 발각됐다. 이 일로 인해 옥에 갇히게 된 길상문에게 김학준은 자신의 목숨과 아들을 구하려면 아편 밀매의 배후로 천오수를 지명하라는 잔인한 제안을 했다.
한편 천오수는 이 일의 진범을 밝히기 위해 ‘보부상의 단’을 열었다. 그는 길상문에게 아편의 출처와 그 배후를 추궁했고, 길상문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학준의 제안을 잠시 떠올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난 우리 천가객주가 육의전에 들어가길 원했다”며 “아편 밀매를 시킨 사람은 인정전(뇌물)을 마련키 위해 나 혼자 한 일”이라고 스스로 누명을 썼다. 천오수는 이런 길상문에 실망하며 “그 죄를 목숨으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렸고, 배신 대신 의리를 택한 길상문에게는 양잿물이 내려졌다. 길상문은 양잿물을 마시고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아들 길소개를 붙잡고 “육의전 대행수가 되어다오. 그래서 우리 장사치들의 왕이 되어다오”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돈은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고 다리가 없어도 달릴 수 있고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이승의 유일한 물건이다. 돈을 많이 벌어 육의전 대행수가 되어라”라고 길소개에게 거듭 당부하고 끝내 목숨을 거뒀다.
음모와 배신, 그리고 의리와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원종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순간에 아들을 향해 유언을 남기며 보여준 간절한 눈빛과 양잿물을 마시고 고통에 몸을 뒤틀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몸짓까지 길상문으로 완벽하게 분한 그의 연기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었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명불허전 명품 연기를 선보인 이원종의 하차는 그래서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 1979년부터 총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됐던 김주영의 역사소설 '객주'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객주'는 후계자 천봉삼이 시장의 여리꾼으로 시작해 상단의 행수와 대객주를 거쳐 마침내 거상으로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 / nim0821@osen.co.kr
[사진] ‘객주’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