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는 왜 '사도'의 영조에게 끌렸나[Oh!쎈 인터뷰]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5.09.26 08: 29

 송강호는,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다. 그 이름 석자 만으로 웬만한 필모그래피가 머릿 속에 떠오르고, 그가 출연했다는 영화라면 장르나 줄거리를 전혀 모르더라도 일단 믿고 봐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이런 신뢰는 송강호라는 배우가 지난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배우의 길을 밟아오며 쌓아올린 견고한 무형의 탑과도 같다.
지난해 '변호인'으로 주목받았던 그가 차기작으로 택한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사도'였다. 1762년 5월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살해된,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송강호는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끔찍한 왕, 영조를 이전에 없던 자신만의 것으로 내뱉었다. 그에게는 '관상' 이후 두 번째의 사극이었다.
"'사도'를 정통사극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오히려 '정공법'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 '사도'는 임오화변을 이준익 감독이 정공법으로 다룬 영화다. 그런 점이 내게 어필했다. 사극에 대한 집착 같은 건 없다. '관상'을 하면서 사극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고, 오히려 현대물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의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정공법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그 느낌이, 이준익 감독의 태도가, 굉장히 좋았다."

사극의 스포일러는 역사라 했던가.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도 이미 충분히 알려진 만큼, 이를 마땅히 피해갈 방도는 없었다. 역사를 왜곡시킬 수도 없는 노릇. 더욱이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등장했던 수많은 '영조' 캐릭터에 대한 잔상과 부담감도 지울 수 없다. 박근형, 최불암, 김성겸, 이순재, 전국환, 한석규…근 20년간 각종 드라마를 통해 영조를 연기했던 배우들이다.
"영화에서 다뤄진 적은 거의 없다. 56년에 '사도세자'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뒤로 다뤄진 건 60년만에 우리가 처음이다. 극단 목화의 '부자유친'이라는 연극을 통해 사도세자를 접했다. 어차피 다 알고 있으니, 소재의 신선함이 떨어질 거라는 고민은 했다. 각자의 표현이나 해석이 다르니깐, 얼마만큼 정직하고 진심으로 연기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싶었다."
그가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택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정치적인 해석을 벗어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포커싱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왕이기 이전에 아버지로서의 슬픔을 확실하게 담아냈다.
"사도세자나 영조에 대하 이야기는 많다. 이것을 어떻게 전달할까에 대한 측면이 가장 매력적으로 와닿았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정치적 인과관계를 떠나서, 군주인 아비와 세자인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게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송강호만의 영조는 '사도'를 통해 완성됐다. 다만 그 영조는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작품 속 영조와 조금은 다른 구석이 있다. 익숙한 사극톤이 아닌, 현대어에 가까운 대화들이 불쑥 튀어나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때도 있다. 실수가 아니다. 다분히 학습되고 의도된 대사다.
"TV사극을 통해 수십년 동안 들어온 사극 말투에 세뇌된 듯한 느낌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말투 아닌가. 지금처럼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진 않았겠지만, 그들도 인간인 만큼 가벼운 대화나 욕설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넌 일년에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몇 번이나 하느냐', '일년에 1~2번 든다', '솔직해서 좋다' 등의 대화는 실제로 사료에 나와있는 그대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뒤주에 갇힌 세자(유아인)와 앞에 선 영조(송강호)가 대화를 나누는 신을 선택한다. 빗소리에, 울먹임까지 뒤섞여 대사가 전달조차 쉽지 않았던 대목이다. 무려 9분 분량의 기나긴 장면이다.
"본래는 대사를 밖으로 내뱉지 않고 마음 속 대사로 처리를 하려고 했다. 현장에서 내가 이준익 감독에게 '후시 녹음을 하더라도 현장에서 대사를 하면서 카메라를 돌라자'고 제안했다. 이준익 감독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그렇게 촬영했다. 감정을 혼자 끌고 가면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안핬다. 대사가 뭉개지는 장면도 있었지만, 후시 녹음은 입히지 않았다. 정확한 대사보다는 감정을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감독님이 판단한 것 같다."
극중 유아인과의 부자 호흡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미 전작 '베테랑'을 통해 '천만 배우'라는 수식어를 꿰찬 유아인은 이번 '사도'에서는 송강호와 연기 호흡을 탁월하게 맞춰냈다. 무려 열아홉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한 두 사람이다.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완득이'때 처음 봤다. 매력적인 배우였다. 조각 미남 스타일은 아닌데, 여러가지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탈'이 좋은 배우라는 게 첫 번째 느낌이었다. '사도'로 처음 작업을 했는데, 낯을 많이 가린다는 공통점이 있더라. 그게 참 편했다. 술자리에서 '너랑 나랑 참 비슷해서 편하다'고 했더니, 유아인은 자기는 좀 무서웠다고 하더라. 촬영한지 1년이 지나 기분 좋게 취해서 둘이서 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친하게 다가오는 분들을 보면 신기하다. 유아인과 나는 그 반대의 성격이다."
이준익 감독은 '송강호의 연기는 감히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송강호가 생각하는 이준익 감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다 봤다. 참 좋아하는 감독인데 이상하게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번에 작품을 해보니, 테크니션보다는 감성의 결을 어느 작품이든 잘 녹여내고 유지하는 느낌이다. 할리우드 감독처럼 준비를 치밀하게 하고, 현장에선 정확한 걸 요구한다. 외모로 보면 고집이 심할 것 같이 생겼지만, 귀가 굉장히 넓으신 분이다. 배우들이 얘기한 걸 한 번도 안 들어준 게 없고, 이를 모두 영화에 접목시켜 좋았다." / gato@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사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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