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아직도 캐릭터에 목 마른 배우[인터뷰]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5.09.29 13: 49

설경구는 흥행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배우다. '실미도'(2003)로 대한민국 영화사상 첫 천만영화를 달성했고, 이후 '해운대'(2009)로 또 한 번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당시 두 편의 천만 영화를 기록한 것은 대한민국 배우 중 설경구가 최초였다. 인터뷰 중 '천만 영화' 언급에 "요새는 뻑하면 천만"이라며 "예전에는 열악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설경구이기에 가능한 멘트였다.
영화 '서부전선' 속 남복과 달리 눈에 띄게 수척해진 설경구의 모습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차기작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준비로 감량을 시작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캐릭터를 위해 80kg의 평소 체중을 68kg까지 줄였다는 설명이다. '역도산' 때는 100kg에 가깝게 늘렸던 그다. 그런 설경구가 이번 영화 '서부전선'에서 맡은 건 '남복'이다. 전쟁 전 그저 농사만 짓던 한낱 농사꾼.
"남복은 정확히는 군인이라고 할 수 없다. 농사꾼에게 군복을 입혀두고, 마음은 농사꾼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다. 총을 제대로 쏠지도 모르고, 겨냥도 못한다. 배운 것도 없어 무식해, 남북 대치에 대한 복잡한 생각도 없다. 마주친 북한군 영광(여진구 분)이도 마찬가지다. 탱크도 못 몰고, 수류탄도 못 던진다. 우린 그냥 '군인이 아니다'가 콘셉트다."

사실 '서부전선'의 시작을 따지면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설경구가 한 차례 고사해 묵혀뒀던 시나리오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둘러싼 많은 환경이 바뀌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설경구가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결국 故이은주의 영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서부전선'은 2009년 무렵 작품을 받았을 때는 못 한다고 했던 작품이다. 6.25의 60주년으로 전쟁영화 붐이 일어날 때였다. (영화를) 고사한 뒤로, 이은주의 기일날 '서부전선'의 PD를 만났다. 그 곳에서 하리마오픽쳐스 대표도 만났는데, '다시 읽어보면 안 되겠느냐'고 재차 권해 수락하게 됐다. 꼭 이은주가 연결해준 기분이 들었다."
촬영장이 꼭 '서부전선' 속 두 사람만큼이나 "어리바리했다"는 게 설경구의 냉정한 지적이다. 근데 이게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영화 만큼이나 사람 냄새가 잔뜩 묻어났다고 했다. 코미디인지 전쟁영화인지 불분명한 정체성을 헤매는 영화의 어수선한 모양새와 비슷했다고.
"좋게 말하면 풋풋함, 나쁘게 말하면 어리바리, 어설픔이다. 평소같았으면 짜증나고 화가 났을텐데, 나중에는 정감까지 들더라. '속도감을 위주로 탱크를 제작중'이라던 제작진이 나중에 '탱크가 움직이질 않는다'고 연락 왔을 땐, 그냥 웃음이 나더라. 그 자체로 재밌고, 사람들이 밉지 않았다. 그러다가 '퓨리'라는 영화를 봤는데, 우리 현장에는 가기도 싫더라.(웃음)"
'서부전선'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설경구와 여진구의 호흡이다. 아들뻘인 배우(*실제로 설경구의 딸과 여진구는 동갑)와 투톱 영화를 맡기는 이번이 난생 처음이다. 촬영이 끝나고 술을 들이키던 설경구로는 아직 미성년자인 여진구가 신선했지만, 배우로 연기 호흡을 맞추는 데는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
"(여)진구가 술을 못 마셔서 숙소에 빨리 들어갔다.(웃음) 시험 잘 봤느냐고 묻고, '잘 봤다'는 답을 하면 '니가 무슨 공부를 했다고 잘 봤냐'고 구박했다. 그것 때문인지 나중에 감독이랑 짜고 대본에 없는 걸 만들어 나를 때리더라. 억울해 물으니 '감독님께 허락받고 때렸다'고 하더라. 아주 잘 컸다. 아역 배우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하긴 경력이 11년이 넘었다니깐…. 아줌마들이 '여진구 오빠'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설경구를 떠올렸을 때 기억나는 작품은 분명 숱하게 많다. 하지만 그것만큼 더 신기한 것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여전히 관객들의 머릿 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던 '박하사탕'의 김영호도, '공공의 적' 강동서 강력 2반 꼴통형사 강철중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투입돼 그저 배우로서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역할 자체에 동화되려는 노력 덕분이다.
"'강철중'을 연기할 때는 실제로 입도 거칠어지고, 성격도 까칠했다. 근데 이제 이렇게 '서부전선'으로 인터뷰를 하다보니 남복처럼 어리바리하고, 말도 더듬고 있다. 배우는 입을 열지 않아도 얼굴만으로도 상황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는 배우에게 있어 자산이다.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한다. 김영호나 강철중을 기억 속에서 상쇄시키려면, 더 센 캐릭터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공공의 적'부터 '공공의 적2', '강철중: 공공의 적 1-1' 등 무려 3편의 시리즈가 나왔던 '강철중' 역은 이제 사양한다고 했다. "내가 과거에 연기했던 강철중을 흉내내서 연기하는 기분이 든다"는 게 분명한 이유였다. 대신 그가 요즘 꼭 하고 싶은 건 의외로 코미디 영화라 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진짜 코미디로.
"코미디를 하고 싶다. 가슴을 울리는 감동 같은 건 모르겠고, 그냥 진지한 상황에서 '빵' 터지게 웃기는 데 집중한 코미디물. 연극 '라이어'처럼 심각한 상황에서 극중 인물들은 아무도 웃지 않고, 그걸 보는 관객은 마음껏 소리내 웃을 수 있는 그런 진짜 코미디 장르로 말이다." / gato@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서부전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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