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이 무려 50회라는 긴 호흡의 대장정을 마치고 안방극장을 떠났다. 차승원, 이연희, 김재원 등 톱스타들을 내세운 MBC 월화드라마 ‘화정’은 큰 기대 속에 출발했다. 허나 방영 내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진부한 정치 사극은 더 이상 안방극장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지난 29일 종영한 ‘화정’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이 가진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한 갈등을 담는 정치 사극이었다. 여기에 죽을 뻔한 위기를 딛고 정치의 중심에 섰다는 설정 하에 정명공주(이연희 분)의 인간 승리 이야기도 곁들어 있었다. 흔히 사극이 성공할 수 있는 진부한 장치라는 정치와 성장 이야기였지만, 드라마는 큰 재미가 없었다.
지난 4월 13일 첫 방송 후 이 드라마는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 연출자의 건강 이상으로 불가피했던 연출자 교체, 일부 배우들의 아쉬운 연기가 문제가 되며 고정 시청자층이 탄탄한 MBC 사극은 웬만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을 깨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일단 이야기 구조가 그동안 MBC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끊임없이 선택한 선과 악의 구도였다. 정명과 대립했던 광해(차승원 분), 인조(김재원 분)의 갈등을 중심으로, 조선을 뒤흔든 악의 축으로 그려진 강주선(조성하 분)과 그 일당들의 모략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정명의 위기가 반복되고, 지리한 정치 싸움이 50회 동안 그려졌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는 주인공 정명이 아닌 주변 인물들로 뻗어가며 산만한 전개를 보였다. 중간 중간에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변동이 생기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변곡점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반등을 꾀하진 못했다. ‘못된 놈’들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못된 놈’들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정명을 비롯한 선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자꾸만 뒤로 밀렸다.
2007년 ‘이산’을 시작으로 2010년 ‘동이’, 2012년 ‘마의’를 통해 인기는 끌었지만 지나치게 통속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김이영 작가는 이번 ‘화정’ 역시 인물만 다르지 권선징악을 목표로 성장과 갈등 봉합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뒤를 보지 않아도 예상되는 흔하디 흔한 전개, 심지어 초반 광해, 중반 정명, 그리고 후반 인조로 이야기 중심이 변동되며 악한 인물들의 계략이 지루하고 겹겹으로 쏟아진 게 흡인력이 없었던 이유였다.
‘화정’은 드라마 자체가 젊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기엔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렇다고 빠르고 중독성 있는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화정’은 몰입도가 강한 드라마도 아니었기에 경쟁 드라마에 밀려 시청률 2위에 주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극은 보통 일반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 ‘시청률 보증수표’로 여겨지는데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정치와 성장이라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안일한 기획이 불러온 아쉬운 성적표였다. / jmpyo@osen.co.kr
[사진] MBC 제공, '화정'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