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와 인조, 그리고 효종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조선사를 관통하며 화제를 모았던 MBC 월화드라마 ‘화정’(극본 김이영, 연출 최정규, 제작 ㈜김종학프로덕션)이 50부작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29일 방송된 ‘화정’ 마지막 회에서는 정명공주(이연희 분)를 필두로 한 정치세력들이 강주선(조성하 분), 김자점(조민기 분), 소용 조 씨(김민서 분) 등의 위정자들을 척결하고 조선 땅에 희망의 싹을 틔우며, 권력이라는 것이 결국 민초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시사했다.
‘화정’은 50부작이라는 긴 호흡 속에 선조부터 시작해 효종에 이르기까지 4대의 왕이 통치하던 시기를 녹여냈다. 그 가운데 왕의 업적이 아닌, 권력 앞에서 왕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동시에 묵직한 감동을 안기는 숱한 명장면을 탄생시키는 등 50부작 내내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은은한 울림을 선사하는 드라마였다.
1. 선조, 광해, 인조, 그리고 효종, 4대의 조선 그리고 권력의 본질
‘화정’은 선조(박영규 분)를 시작으로 광해(차승원 분), 인조(김재원 분), 비운의 왕세자 소현(백성현 분)에 이어 효종(이민호 분)에 이르기까지 4대의 왕을 관통하는 새로운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와 함께 정명공주, 홍주원(서강준 분), 강인우(한주완 분), 강주선, 이이첨(정웅인 분), 김개시(김여진 분), 김자점, 소용 조 씨, 인목대비(신은정 분), 이원익(김창완 분), 이덕형(이성민 분), 허균(안내상 분), 최명길(임호 분), 김상헌(이재용 분), 이항복(김승욱 분), 정인홍(한명구 분), 유희분(유승목 분), 이충(정규수 분), 김류(박준규 분), 이귀(장광 분), 이영부(김광규 분), 장봉수(박원상 분) 등 수많은 군상들을 조명하며, 이를 통해 조선 권력투쟁사의 한 단면을 묘사했다.
이 같이 신선한 시도는 ‘화정(華政)’의 주제의식인 ‘빛나는 정치’를 한층 강조하는 장치가 됐다. 정의를 추구하는 이와 사리사욕을 탐하는 이, 비뚤어진 시대를 바로 잡으려 이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이가 조선 정치판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케 해, 권력의 속성과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내며 호평을 불러 모았다.
2. 인간으로서의 왕, 입체적인 인물 묘사 통한 공감 획득
‘화정’ 속의 왕은 업적이 아닌 인간이었다. 또한 단편적인 인간이 아닌 변화하고 성장하는 입체적 인간이었다. 보통 광해를 폭군, 혹은 비운의 개혁군주로 묘사한다. 또한 인조는 무능한 왕, 조선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군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화정’ 속 광해와 인조는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브라운관을 사로잡았다.
광해는 계축옥사(대북파가 서인 세력과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를 묵과했고, 자신의 아버지를 독살한 김개시와 이이첨을 처벌하지 않고 자신의 옆에 뒀다. 이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해 선정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듯 ‘화정 속의 광해는 조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은 비정한 군주가 되기를 자처했던 인물로 묘사됐다. 이는 폭군으로서의 광해, 개혁 군주로서의 광해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동시에 ‘인간’과 ‘왕’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광해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며 ‘광해’의 재발견을 이룩했다.
또한 인조의 폭정에도 설득력을 부여했다. ‘화정’은 인조를 자신에게 왕재가 없다는 사실과 반정을 통해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에 끊임없이 자격지심을 안고 사는 인물로 그렸다. 이로 인해 선정을 펼치고 싶었지만 간신배들의 손을 물리치지 못했고, 나아가 아들 소현의 죽음까지 야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죽기 직전, 간신배들을 척결하고 봉림대군(효종)에게 힘을 실어주는 ‘왕의 선택’을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3. 역사의 한 페이지, 명장면으로 강렬한 각인
‘화정’은 수많은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특히 4회 광해가 영창대군(전진서 분)에게 드리워진 역모 누명을 방조하며, 동생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정명(정찬비 분)에게 “왕실에 어린아이는 없다”며 외면하는 장면은 권력 앞에 혈육마저 제거해야 했던 서글픈 역사인 ‘계축옥사’를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29회 광해 역의 차승원과 인조 역의 김재원의 불꽃 튀는 카리스마 맞대결로 인해 ‘인조 반정’은 한층 스펙터클하게 묘사됐으며, 42회 인조가 청국의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를 해야 했던 치욕적인 역사인 ‘삼전도 굴욕’은 배우들의 처절한 눈물연기 속에서 한층 더 비극적으로 그려졌다.
이 밖에도 ‘화정’은 임진왜란, 심하전투,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역사적인 사건들을 강렬한 색채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엮어내며 시청자들 마음에 아로새겼다.
한편, ‘화정’은 혼돈의 조선시대 정치판의 여러 군상들이 지닌 권력에 대한 욕망과 이에 대항하여 개인적인 원한을 딛고 연대하는 광해와 정명 그리고 그런 정명이 인조 정권 하에서 그 권력과 욕망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50부작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화정’ 후속으로 ‘화려한 유혹’이 다음 주부터 송될 예정이다./jykwo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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