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소담 인턴기자] 하루에도 몇 개의 사건이 터지는 연예계에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기억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성이 높은 이슈에 관심을 보인다. 고(故) 최진실의 기일이 찾아올 때마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이들까지도 깊은 슬픔에 사무쳤다. 우리는 왜 최진실을 잊지 못하고 있을까.
2일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7년 되는 날이다. 지난 4월 MBC ‘휴먼다큐 사랑’ 이모현 PD가 “최진실 씨 모친이 딸과 아들인 최진실, 최진영 씨가 대중에게 잊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출연을 결심하셨다고 하더라”라고 말하며 걱정했지만 대중은 여전히 최진실을 추억했다. 프로그램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환희, 준희 가족을 응원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7년이 지났음에도 변치 않는 슬픔의 무게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최진실이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여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데뷔해 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톱스타로 우뚝 섰다.
그는 단순히 인기 있는 스타가 아니었다. 대중의 정서를 감싸안는 친근한 가족 같은 존재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성공한 후 동생 최진영을 살뜰히 챙기는 누나이자 엄마 정옥숙 씨를 극진히 보살피는 효녀라는 성공 신화는 외환위기 시절 절망했던 많은 국민들을 위로했다. 특히 동생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최진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이 남매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가 작품에서 그려나가는 신데렐라, 캔디의 성공 이야기는 희망을 꿈꾸는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성원을 이끌어냈다. 최진실은 작품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고, 이는 모두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최진실만큼 뛰어난 연기와 대중성, 그리고 높은 영향력까지 모두 갖춘 여자 배우가 없을 정도로 최진실은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정상의 자리에 있는 스타이자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이때부터 최진실은 국민의 딸이자, 국민의 언니이자, 국민의 엄마였다.
최진실이 단순히 국민 여배우였기 때문에 이러한 관심을 받는 건 아니다. 비극적인 사연이 더해지면서 지속적으로 상기하게 된다. 최진실은 지난 2008년 10월 2일 루머와 '악플'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동생 최진영과 전 남편 조성민도 연달아 생을 마감했다. 지난 1일 방송된 JTBC ‘뉴스룸’은 클로징 직전 최진실을 추모하는 영상을 내보내며 ‘키보드 살인’을 언급했다.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루머와 악플이 한 사람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아울러 스타 지인들과 가족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최진실을 떠올리고 있다. 환희와 준희 남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대중은 최진실을 그리워하고 생전 절친한 동료였던 이영자와 홍진경 등이 끊임없이 그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최진실을 잊지 못할 것이다. / besodam@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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