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4개월 만에 선보인 학원물, KBS 2TV 월화드라마 '발칙하게 고고'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성적지상주의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학생들의 실태를 낱낱이 그려내 시선을 끈다. 성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학생의 오만함, 혹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해하는 모습 등은 극단적이지만 끝없는 경쟁에 노출된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200명 동급생 모두를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고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권수아(채수빈 분)는 남들보다 빠르고 확고하게 본인의 미래 설계를 해놓고, 이에 따라 움직이며 타인을 이용하는 악녀로 등장하고 있다. 권수아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친구로 여겼던 강연두(정은지 분)를 배신한 것은 물론, 대입을 위해 필요한 응원단 스펙을 위해 자해한 하준(지수 분)의 피를 이용하기도 하는 극악무도한 모습을 보인다.
권수아는 스펙을 위해 입시 컨설턴트 이실장(길해연 분)을 고용하고, 그에게 마구 소리치는 히스테릭한 모습으로 전교 2등의 초조함과 열등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행하는 폭력적인 갑질은 현실감 있는 묘사와 어우러지며 극의 메인 줄기를 끌고 가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갈등을 담당한 채수빈의 악녀 연기는 아직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지 못한 듯하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후아유-학교2015'의 조수향이 참고 자료가 됐다.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해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상황. 조수향이 연기했던 강소영 역은 MBC 연기대상에서 이유리에게 대상을 안긴 '왔다 장보리'의 '국민 악녀' 연민정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시청자를 강력하게 끌어당겼기 때문에 채수빈의 악역 변신도 궁금증을 높였다.
전작 '파랑새의 집'에서 맑고 순수한 은수 역으로 분해 선한 눈으로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는 그의 악녀 연기를 쉽게 상상할 수 없던 것이 사실. 하지만 채수빈은 조수향을 언급해 스스로 기대치를 높였음에도, 아직 뚜렷한 개성을 발견할 수 없는 연기와 늘 새초롬한 표정으로, 망가짐을 불사하지 않는 정은지의 곁에서 디테일을 놓치고 있다는 인상을 안긴다. 이는 '후아유'가 불과 4개월 전에 종영해 아직 많은 시청자들에게 조수향의 잔상이 남아있다는 점이 채수빈 연기력에 대한 잣대를 더욱 엄격하게 한 것.
'후아유'에 갈등을 담당했던 조수향은 신인임에도 자연스럽고도 악독한 표정 연기로 개연성의 미묘한 빈틈마저 모조리 메워버리며 극 안에서 대활약했는데, 그의 메소드 연기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강소영에 분노하는지, 조수향을 미워하는지 헷갈릴 정도의 놀라운 몰입도를 발휘한 바 있다. 또한 그의 처절했던 마지막은 시청자에게 통쾌함과 연민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했다.
부모의 높은 기대와 조건을 내건 사랑에 상처받고, 그 스트레스를 어긋나게 풀며 친구를 마구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아유'의 강소영과 '발칙하게 고고'의 권수아는 무게감이 같은 악녀로 극의 중심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극 초반부터 대놓고 악행을 이어가는 이들의 존재감이 확연히 다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갈등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극에서 큰 재미를 기대할 수는 없을 터. 신인 등용문, 스타 등용문으로 불리는 '학교' 시리즈의 명성에 어울리는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응원을 끌어내게 하는 배우의 힘이 중요한데, 채수빈은 아직 이 부분에서 제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jykwon@osen.co.kr
[사진]'발칙하게 고고'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