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은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아직 쑥스럽다고 한다. “집에 가면 아줌마다”라며 웃어넘기기 바쁘다. 대중에게 배우 이선균의 아내로 더 유명한 이 여인은 사실 결혼 전 남편보다 더 유명한 연극배우였고, 기대를 받는 영화배우였다. 2009년 결혼 후 가정을 위해 배우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은 듯해 보였던 전혜진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3년. ‘더 테러 라이브’부터 시작해 ‘인간중독’, ‘허삼관’ 등 주목받는 영화들에 출연한 그는 이번엔 사극 ‘사도’(이준익 감독)에 합류,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해냈다.
전혜진은 ‘사도’를 통해 배우로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 공은 “용기를 주셨다”며 이준익 감독에게 돌렸다. 촬영지가 지방이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때로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애써 감춰야 할 때도 있었지만 무사히 한 작품을 끝낼 수 있었다.
“용기와 격려를 얻은 게 엄청 많아요. 이준익 감독님을 못 만났으면 다시 굴속으로 갈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이게 처음이었어요. 촬영장이 지방이었는데, 오래 집을 떠나 있을 때가 많았어요. 결혼생활도 중요한데 둘 다 피해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죠. 회로가 돌아갔어요. 어떻게 하지? (영화는) 끝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엄마로 계속 있다가 부재가 크니까. 전화가 계속 오고요. 궁궐이니까 나갈 수도 없고 7살, 5살 아이들이 찾고 이러니까. 그 때 많이 흔들렸는데 감독님께서 많이 바꿔 주셨어요. 용기를 주셔서 고맙다고 그랬죠.”
많은 흔들림 끝에 완성된 영화에서 전혜진이 보여주는 연기는 탁월하다. 아들과 손주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아들을 죽게 만드는 어머니의 비극적인 운명은 후반부 오열 신에서 폭발한다. 스스로도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전혜진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맨 정신으로는 연기를 할 수 없어 술을 딱 한 잔 했노라고 귀띔을 하기도.
“준비자세는 돼 있었어요. 감독님이 ‘술 한 잔 줄까?’ 해서 사러 가는데 5분이 걸렸죠. 다 조용하고 압박이 왔어요. 한 잔을 딱 먹고 다 저만 보고 있으니까요. 그냥 했어요. 기억이 잘 안나요. 술 기운인지 저도 이런 연기를 해본 적은 없었어요. 무장해제가 됐죠. 계산도 없고 대사도 이게 아니었어요. ‘내 새끼 내가 죽인 거 아닌거지?’ 그 말만 계속했어요. 감독님이 안 끊으시더라고요. 더 보고 싶으셨나 봐요. 계속 안 끊으셔.(웃음)”
“‘사도’를 왜 했느냐?”는 질문에 전혜진은 “이준익 감독? 오~ 뭐지? 나를 어떻게 알지?”가 자신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고 했다. 감독에게 제안을 받았고, 유명한 감독이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준 것에 놀랐다는 것. 그 다음은 대본이었다. 이야기는 ‘겁이 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결론적으로 이를 가장 기뻐한 이 중에 한 명은 송강호였다. 송강호는 전혜진의 캐스팅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를 걸어 반가움을 표했다고 한다. (송강호와는 같은 극단 출신일 뿐 아니라 같은 소속사다.)
“감독님이 송강호 선배를 처음 만났는데 제가 한다고 얘기했더니 너무 좋아서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나올 수 있느냐고, ”저는 영광“이라고 그랬죠. 강호 선배님도 그렇고 이준익 감독님도 그렇고, 왜 나를 그렇게 반겨줬지? 강호 선배님이 그러더라고요. 극단 후배기도 하지만 이 인물이 좀 더 유명한 큰 역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름이 알려진 여배우가 하지 않을까 생각 했다고. 그래서 이후에 감독님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고 하네요.”
남편은 유명한 배우. 비교를 하거나 함께 언급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그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은 없었을까? 전혜진은 그런 것에 대한 불편함은 없다고 했다. 다만, 연애시절부터 ‘배우 마인드’가 없어 너무 당당하기만 한 남편을 많이 혼냈다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했죠. 예전에는 (이선균이) 목소리만 내면 다 아니까요. 저는 눈에 띄는 걸 싫어해서 그걸 가지고 많이 싸웠어요. 이선균 씨는 ”내가 죄 지었어?“ 하는, 털털한 사람이에요. 배우 마인드가 아니다보니까, 저한테 많이 혼났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사람 까칠해? 이런 사람이 없지 않을 거예요.”
전혜진이 줄곧 되뇌이며 토로한 것은 것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이었다. 영화가 좋아 시작한 현장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었고, 스스로에게 배우의 덕목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남편은 유명한 배우가 됐고, 도전에는 더 큰 두려움이 뒤따랐다.
“선균을 만나기 전부터 배우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나의 길이 아닌 거 같고,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 대학 졸업도 안 하고, 조명팀이든 무슨 팀이든 상관없이 영화에 들어가고 싶어서였는데, 배우로 들어온 건 20대 초반이었어요. 그게 제 처음 사회생활인거죠. 그 때 이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여배우라는 게 나랑 안 맞는다고요. 여배우의 덕목들이 나에게 없더라고요. 힘들겠다. 연극을 하게 됐어요. 지금도 많이 흔들려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이선균이 유명해졌어요. 더 하기가 두려운 거예요. 잘못하면 욕먹을 수 있겠다. 그럴수록 더 숨어요. 잘 하고 있으니까요. 인터뷰건, 무대인사건 뒤에 있기를 좋아하는데,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제가 배우로 간다면 이제는 나와도 되겠다. 얘기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될 대로 되라”며 자신을 열어 보이기 시작한 전혜진. ‘사도’ 이후에도 영화와 연극 스케줄이 잡혀있다.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 보고서’라는 작품이다. 전혜진은 이선균에게 아이들을 보라, 꼬시고 있다고 해 웃음을 줬다.
“애들을 봐주는 분을 구해야하나 싶어요. 그래서 선균 씨에게 ‘두 달만 아이들이랑 같이 일을 해봐라’ 얘기를 하고 있어요. 전 딱 10, 11월만 바쁘니까요. 그 때가 지나면 애들이 너를 떠날 수 있다. ‘사도’처럼. 이 때 아니면 친해지기 힘들다면서 꼬시고 있어요.(웃음)” /eujenej@osen.co.kr
[사진]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