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디스 배틀'을 보는 건 아닌가. 여성 래퍼들 사이를 오고가는 디스는 남성 래퍼들 못지 않게 살기가 등등했지만, 그 보다 더 재미가 있었던 것은 걸그룹 출신 두 사람이 만들어낸 진기한 풍경이었다. 각기 정상의 아이돌 멤버란 꼬리표를 떼고, 디스 전을 펼치는 래퍼로 변신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였다.
지난 9일 오후 방송된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2'에서는 유빈과 효린의 디스 배틀이 펼쳐졌다.
둘의 매치는 사실 마지 못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인지도 몰랐다. 다른 래퍼들이 디스 배틀의 상대를 고를 때 두 사람은 유일하게 지목을 당하거나, 지목하지 않은 이들이었고, 결국 마지막에 남아 함께 하게 됐다.
효린의 경우엔 원래 보컬 출신이기에 잃을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유빈은 처음부터 효린과의 배틀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짝이 정해지기 전 유빈은 '최악의 짝'을 묻는 질문에 "효린이다. 같은 아이돌 출신인데 보컬이고..지면 그림이 안 좋다. 나에게"라고 답했다. 그만큼 래퍼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은 유빈이었다.
두 사람의 디스 배틀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거리였다. 모두들 "언제 원더걸스와 씨스타가 붙는 걸 보겠느냐"며 흥미진진한 반응. 예지와 수아, 키디비와 헤이즈, 캐스퍼와 전지윤, 트루디와 길미가 살벌한 디스 배틀을 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나선 이들이 유빈과 효린이었다.
유빈과 효린은 단단히 준비를 한 듯 신경전을 벌였다. 유빈은 같은 JYP엔터테인먼트 출신인 효린을 "김효정 씨"라 부르며, "JYP에서 잘리고 난 뒤 잘돼서 축하해. 그 때 왜 잘렸는 지 알아? 알아서 추측해"라고 말하며 신경을 긁었다.
효린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유빈에게 "떴다하면 가버려 유빈의 삑사리"라며 약점을 잡았고, "진영 오빠 플라토닉 러브 하는 소리 말고 짐 챙겨 집 가야지. 넌 이따 없으니까"라고 랩을 하며 유빈의 얼굴을 굳게 했다.
승리는 효린의 몫이었다. 다소 긴장했던 유빈은 몇몇 대목의 가사를 잊어버렸고, 이를 자연스럽게 넘겼지만 조금 더 위협적인 느낌이 강했던 효린이 판정 승한 느낌이었다. 다른 래퍼들 역시 "효린에게 까불면 안 되겠다", "진짜 래퍼가 됐다", "표정이나 모든 게 딱 디스에 적합했다"는 평을 내리며 승리를 인정했다.
이날 펼쳐진 두 아이돌 멤버의 디스 배틀은 그 어느 팀보다 '핫'했다.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고정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걸그룹 멤버'라는 입장에서 이미지를 버리고 경쟁에 임한 유빈과 효린의 모습은 승패를 떠나 값졌다. 디스 배틀은 종종 상대방에게 창피와 모욕을 준다는 점에서 늘 논란에 휩싸이지만, 이날의 배틀 만큼은 이미지에 가려진 걸그룹 멤버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어 재미가 있었다는 평이 많았다.
한편 '언프리티 랩스타2'는 음반 발매의 기회를 얻기 위해 출연한 여성 래퍼들이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경쟁에서 이기면 프로듀서와 함께 곡을 발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길미, 씨스타 효린, 원더걸스 유빈, 트루디, 헤이즈, 캐스퍼, 키디비, 문수아가 출연 중이며 최근 애쉬비와 안수민이 탈락하고 전지윤이 합류했다. /eujenej@osen.co.kr
[사진] '언프리티 랩스타2' 방송화면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