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혁권이 ‘육룡이 나르샤’에서 짙은 아이섀도우를 눈덩이에 바르고, 다소 여성스러운 자태를 뽐낼 때 시청자들은 예상했다. 어떤 드라마에서나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가 이 드라마에서도 범상치 않은 일을 꾸밀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3회는 박혁권이 연기하는 길태미가 무시무시한 면모를 뽐내기 시작했다.
박혁권은 현재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삼한 제일검 길태미를 연기하고 있다. 고려 실세 이인겸(최종원 분)의 오른팔이자 삼한 제일검으로 꼽히는 무사다. 첫 등장 당시 화려한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여성스러운 행동과 목소리로 큰 비밀을 품고 있음을 예상하게 했던 바. 길태미는 모두의 불안과 기대대로 정도전(김명민 분)을 지독히도 괴롭히는 인물로 부상했다.
길태미는 가벼운 것을 넘어 촐싹 맞고 심각한 순간에도 앙탈을 부리는 남자, 허나 현재까지 그에게 대적할 무사가 없을 정도로 인간 ‘살생 무기’다. 3회에서 정도전에게 한지에 물을 먹여서 질식하는 고문을 하거나 지독히도 괴롭힌 후 “왜 말을 안 해주냐”라고 투정을 부리는 섬뜩한 면모는 스릴러 영화에서 나오는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길태미가 워낙 내공이 세기 때문에 박혁권이 표현하는 여성스러운 면모는 오히려 더 매서운 인물로 포장되고 있다.
상대의 기습 공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로 누를 수 있는 그의 무술 내공은 향후 이 드라마에서 갈등 촉발제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허허실실 전략을 펼치며 진중한 기선제압보다 더 소름 끼치는 중압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길태미의 웃음 뒤 감춰진 냉혹한 야심은 ‘육룡이 나르샤’를 보는 또 다른 흥미 지점이 되고 있다. 언제 웃을지, 언제 날선 모습을 보여줄지 몰라 늘 반전의 순간을 만들기 때문.
박혁권은 분량은 많지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빼앗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해 드라마 ‘밀회’에서 김희애의 못난 남편을 연기하며 생활 밀착형 섬세한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올해 드라마마다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올해 초 방송된 ‘펀치’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연기하고, 바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따뜻한 남자로 변신했다. 이후 ‘프로듀사’에서 다소 웃긴 장치가 섞여 있는 인물로 로맨스 외의 재미를 담당했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극의 갈등 촉매제 역할을 하는 중이다. 비중이 많지 않더라도 극을 휘어잡으며 탄탄한 연기 내공을 뿜어대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는 재밌는 사극을 만드는 재주가 있는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고려 말과 조선 건국을 배경의 재밌는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김명민, 유아인, 천호진, 변요한, 신세경 등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이 있을 드라마가 예상되는 가운데, 예상 못한 ‘히든 카드’인 박혁권의 활약이 매섭게 펼쳐지고 있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란 바로 이런 것이다. / jmpyo@osen.co.kr
[사진] SBS 제공,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