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린 만큼 보람이 있었다. 배우 유아인이 이방원으로 변신, 고작 10분의 출연만으로도 ‘육룡이 나르샤’ 주인공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다. 영화 ‘베테랑’부터 ‘사도’,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까지 지금은 ‘아인 시대’다.
유아인이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본격적인 등장을 했다. 지난 13일 방송된 4회는 마지막 10분이 이방원과 이방지(변요한 분)라는 조선의 기틀을 세우는 젊은 피의 재회가 담겼다. 동시에 남다름, 윤찬영 등 어린 배우들이 퇴장하고 유아인, 변요한이라는 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지점이었다.
기대는 높았다. 이미 첫 회에서 스쳐지나가듯 짧은 등장만으로도 관심이 컸던 상황. 유아인은 정도전(김명민 분)의 한차례의 개혁 시도가 실패하고 회의감과 좌절감에 휩싸인 채 살아가는 이방원으로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다. 힘이 빠진 채 기와에 몸을 기대 앉아 있는 이방원의 절망 가득한 표정, 그리고 방송 말미 조선이라고 적혀 있는 고려 땅을 보며 놀라는 모습은 향후 유아인이 그릴 이방원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유아인은 4회에서 고작 10분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기개가 남달랐던 이방원이 나라를 바꾸지 못한다는 괴로움에 사무쳐 포기하고, 새로운 지도를 발견하기까지 떨리는 긴박감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보통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해도 첫 등장은 다소 어색할 수 있는데, 유아인은 이질감 없이 이 드라마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방원의 강한 기상을 제대로 표현했다. 워낙 아역 배우 남다름이 지난 4회간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명연기를 펼쳤지만, 이를 이어받은 유아인은 역시나 부담감 없이 자신만의 연기를 펼쳐놨다.
유아인의 진가가 발휘된 순간, 우린 그가 올해 연이어 작품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잠시 잊었다. ‘베테랑’에서 파렴치한 악역으로 스크린의 분노를 유발했던 조태오부터, ‘사도’ 속 안타까웠던 사도세자,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의 강한 중심축인 이방원까지.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 까닭에 그의 전작이 겹쳐지지 않는 재주가 있는 배우다. 앞으로 조선을 세우기 위해 정치력 싸움을 벌이고,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이는 속에서 유아인이 보여줄 감정 연기가 안방극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기를 보는 맛이 있는 배우, 유아인이 펼쳐놓는 이방원이 이제 막 시작됐다.
한편 ‘육룡이 나르샤’는 이날 방송을 기점으로 시간이 흘러 각자의 이상향은 다르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하는 목적으로 뭉치게 될 인물들이 성장과 변화를 준비하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정도전은 이방지의 암행 속에 새로운 하늘을 준비하고 있고, 이방원도 이들과 힘을 합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는 6명의 주인공들이 왜 나라를 전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이 탄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지며 돌담을 쌓듯 촘촘하게 이야기를 꾸려간다. 이 같은 명분이 향후 서로에게 힘이 될 수도, 새로운 갈등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는 법, 이 같은 갈등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가 ‘육룡이 나르샤’의 다음 회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 jmpyo@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