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연기 잘하는 배우는 어떤 순간에도 빛이 나기 마련이다.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었던 화장이나 말투도 자신의 것으로 완벽히 소화해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이제는 웃음기 거둔 은거 고수까지 제 옷 입은 듯 제대로 완성해냈다. 이것이 바로 배우 박혁권의 힘이다.
박혁권은 지난 13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 4회에서 권문세족 길태미 뿐만 아니라 그의 쌍둥이 형제인 길선미까지 연기했다. 길태미는 화려한 화장과 장신구를 즐기는 인물이다. 여성스러운 말투 역시 길태미의 특징 중 하나. 하지만 칼을 잡았다 하면 눈빛부터 변하는 무사 중의 무사로 스스로를 삼한제일검이라 칭하고 있다.
길선미는 이 길태미와 전혀 다른 성정의 인물이다. 노국공주의 호위무사였으나 지금은 고수인 길선미는 온화하고 남자다운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땅새(훗날 이방지/윤찬영 분)를 장삼봉(서현철 분)에게 부탁하는 인정 많은 모습으로 길태미와는 정반대의 선한 인품을 자랑했다.
반면 길태미는 왜구가 양광도까지 쳐들어오자 군사를 확보하기 위해 관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도당에 불러모았고, 그 누구도 선뜻 군사를 내놓지 않자 백성들의 당을 이용해 전쟁 장사를 하는 악랄한 면모를 보였다.
연극 무대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연기 내공을 탄탄히 쌓아온 박혁권은 이처럼 생김새 외에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위화감 없이 소화해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분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빼앗는 존재감은 여전했다. 모든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1인2역까지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너무나 훌륭히 소화해낸 박혁권에 시청자들의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이인겸(최종원 분)의 옆에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인이 되었다가 이내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주는 선인이 되는 그의 남다른 활약을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길태미의 아들 길유(박성훈 분)까지 유생들을 괴롭히는 악랄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는 상황. 이를 이방원(유아인 분)이 자조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편, 길선미와 장삼봉의 도움을 받아 최고 경지의 무인이 된 이방지(변요한 분)가 정도전(김명민 분)의 뜻에 따라 백윤(김하균 분)을 죽이는 모습이 담겨진 가운데 길태미는 앞으로 또 어떤 존재감을 뽐내게 될지 궁금해진다.
한편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철혈 군주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여섯 인물의 야망과 성공 스토리를 다룬 팩션 사극이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