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워낙 각박한 현실을 마주하다 보니,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간접적인 소식으로 접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극도로 몰입하고 분노한다는 것. 그래서 보통 스타들이나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감정을 이입해 분노하고 배척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는 사과의 기술을 잘 익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실수로 인해 비난을 받거나, 논란의 중심에 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방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물론 이 같은 사과는 진심이 담겨 있어야 효과가 더 크다.
방송 11년차인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큰 인기만큼이나 논란이 끊이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진짜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있고, 워낙 높은 인기를 누리다 보니 작은 오해도 눈덩이처럼 커져서 결국 사과를 해야 하는 일도 있다.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지만, 국민 예능의 무게감은 제작진과 출연진을 겸허하게 만든다. 이들은 셀 수 없이 사과를 해왔고, 사과로 많은 감명을 안기기도 했다. 사과로 논란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감동까지 안기는 기술과 진심, '무한도전'을 보고 배워야 할 이들이 참 많다.
# 명확한 사과 주체와 대상, 장황하지 않은 설명
왜 ‘무한도전’만 꼬투리를 잡느냐는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게 됐다. 실제로 잘못을 했든, 오해이든 일단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 프로그램은 소통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귀를 기울이고 사과를 표명하는 일이 많다. 특히 ‘무한도전’의 사과문은 사과 주체가 제작진 혹은 출연진으로 다른 이들에게 핑계를 대지 않는 게 특징이다. “‘무한도전’은 앞으로 이런 실수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살피겠다”라는 프로그램 주체를 앞으로 드러내는 사과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과문은 지난 해 편집 과정이 길어지면서 한 장면이 두 번 나온 것에 대한 제작진의 표명이었다.
또한 멤버였던 길과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지난 해 나란히 하차할 때도 보도자료와 방송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사과를 했다. 사실 멤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제작진과 출연진은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라고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왜 하차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음주운전 적발 사실 관계)을 하고 “깊이 반성한다”, “사과 드린다”, “하차하고 기존 촬영분은 편집한다”라는 장황하지 않고 꼭 들어가야 할 사과와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은 논란을 조금은 수그러들게 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단어도 없을뿐더러 또 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개선 의지를 강조하는 현명한 사과를 하고 있다.
특히 방송을 통해 사과를 할 경우, 김태호 PD와 함께 이 프로그램의 수장인 유재석의 입을 빌리는 일이 많다. 유재석은 자신의 실수는 아니지만 동료 혹은 제작진의 실수를 사과하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대중 역시 그의 사과를 들으며 프로그램과 유재석이라는 국민 MC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사과 통로도 많다. 방송과 보도자료를 통한 언론 표명, 공식 홈페이지와 트위터 등 인터넷 공간 등을 활용하며 여러차례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 빠른 상황 판단, 그리고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사과
사과는 시의적절해야 한다. 너무 빨라도 진정성이 없어 보이고, 너무 늦으면 분노를 키운다. ‘무한도전’은 올해 열린 가요제에서 관객들이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일자마자 하루도 되지 않아 제작진은 고개를 숙였다.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이 잘못이었지만 주최자인 ‘무한도전’이 대신 사과를 하며 청소를 말끔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당시 제작진은 “조금씩 깨끗한 평창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다시 한 번 심려 끼쳐 죄송하다”라고 사과하며 청소 후 뒷 모습의 사진을 공식 트위터에 게재했다. 사과문을 발표한 것뿐 아니라 개선된 상황까지 공개하며 논란의 싹을 잘라버렸다.
또한 공연 당시 자이언티의 휴대 전화 번호가 공개되며, 유사 번호 사용자들이 불편을 끼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이들은 “이벤트를 기대하셨거나 반대로 이벤트로 불편을 느낀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사과했다. 또한 방송에는 전화 번호를 내보내지 않는 사후조치를 했다. 논란이 벌어지고 하루가 되지 않아 사과를 하고, 개선책까지 내놓은 완벽한 사과였다. / jmpyo@osen.co.kr
[사진]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