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드라마에는 잘나가는 악녀가 있다. ‘왔다! 장보리’에서 이유리는 주인공에 버금갈 정도로의 인기를 구가하면서 그 이후로 더욱 악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장보리’의 김순옥 작가가 컴백한 MBC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에서는 박세영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명품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는 그 만큼 악독하게 그려지는 악녀는 없지만 차예련에게 어째 더 얄미운 구석이 있다.
지난 19일 방송된 ‘화려한 유혹’에서는 강일주(차예련 분)가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진형우(주상욱 분) 대신 권무혁(김호진 분)과 결혼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일주는 형우에게 혼자서는 무서우니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며 미안해했다. 언뜻 보면 아련한 로맨스가 그려지는 듯하지만 유년 시절도 함께 떠올려보면 이 애틋함도 의심이 간다. 도대체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보고 있을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또 그것이 이 드라마의 재미긴 하지만.
일주의 어린 시절은 이름은 백상희(김보라 분)다. 상희는 은수와 형우의 키스를 목격하고 분노했다. 그 역시 형우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내 “사람 좋아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했던 게 너다”며 은수를 안아줬다. 훈훈한 우정을 그리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다음 이어지는 상희의 행동들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은수가 진정기(김병세 분)의 비자금 관련 문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가운데 진범은 상희로 밝혀져 시청자들의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또 친구의 사랑을 응원했던 상희였지만 형우와 키스하는 모습이 얄미움을 자아냈다. 심지어 성인이 된 지금 일주(상희)는 친구의 첫사랑이었던 형우까지 이용하고 있다. 복수심에 우정 또는 사랑을 배신한 것인지, 사랑에 우정을 배신한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 이처럼 차예련은 복합적인 인물의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차라리 일관적으로 못된 게 낫다는 말이 맞았다. ‘내 딸 금사월’의 오해상처럼 금사월(백진희 분)에게 따뜻한 가족도, 사랑하는 남자도 모두 빼앗기 위해 일관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면서 죄책감도 가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일주의 행동들은 이해되는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주인공 은수에 감정을 이입해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첫사랑을 빼앗긴 연적인 것인데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다.
한편 ‘화려한 유혹’은 비밀스러운 이끌림에 화려한 세계로 던져진 한 여인의 이야기로 범접할 수 없는 상위 1% 상류사회에 본의 아니게 진입한 여자가 일으키는 파장을 다룬 드라마다. 호연을 펼친 아역 연기자에서 성인 연기자로 모두 성공적인 바통터치를 마쳤다. / besodam@osen.co.kr
[사진] '화려한 유혹'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