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모두에게 이로운 ‘특종’이란 세상에 없다. 기자와 언론사 입장에서 특종은 분명 누군가가 어떻게든 은폐하고 싶은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간혹 ‘알 권리’로 접근한 특종이 ‘아는 재미’나 ‘부당 거래’인 경우도 있지만 선의의 특종은 세상을 한 뼘 향상시키는데 기여하는 법이다.
변두리 보도국 사회부 기자 허무혁(조정석)에게도 특종의 유혹은 달콤했다. 이혼과 대기 발령 위기 속에 건진 일생일대 스쿠터를 놓칠 수 없었을 거다. 이거 한 방으로 화끈하게 사회부에 복직도 하고 전시 큐레이터인 예쁜 아내(이하나)와의 혼인 지속도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달달함이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로 변하는 데는 불과 7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게 함정.
희대의 연쇄살인범 주거지와 인상착의, 동선까지 파악한 무혁은 이를 방송 보도해 일약 베테랑 대접을 받으며 경찰의 약을 바싹 올린다. 심드렁하게 받은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그를 스타 기자로 만든 것이다. 천덕꾸러기에서 하루아침에 시청률의 아이콘이 된 무혁은 내친김에 살인용의자 집에 잠입해 입수한 친필 메모까지 터뜨려 주가를 높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것이다.
하지만 이 메모가 연극으로도 번안된 중국 소설 ‘량첸 살인기’의 한 구절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 무혁은 망연자실하며 나 홀로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이 반전은 ‘특종’의 1차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보도국장(이미숙)과 간부들은 후속 보도를 위해 무혁을 닦달하고 무혁은 어떻게든 이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올무는 그를 더 가혹하게 옭아맬 뿐이다.
이 쫄깃한 영화가 그저 그런 영화에서 지능적인 스릴러로 환승하는 건 희대의 사기꾼이 될 처지의 무혁과 그의 오보가 마치 예언처럼 적중하는 순간부터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죄가 무혁의 오보대로 척척 맞아떨어지자 세상은 그를 더욱 헹가래치고 그럴수록 무혁은 추락에 대한 극도의 공포에 휘말리게 된다. 범죄자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무혁은 과연 ‘편도’와 ‘왕복표’ 중 어떤 티켓을 구매하게 될까.
노덕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연출 데뷔작 ‘연애의 온도’의 호평이 우연이나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었음을 떳떳하게 증명해 보인다. 마치 데뷔를 위해 모두가 좋아할 만한 멜로로 가볍게 몸을 푼 뒤, 이제부터 숨겨뒀던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겠다는 인상까지 준다. 웃으며 입장했다가 어느 순간 무장해제 되고, 급기야 섬뜩함까지 맛보게 되는 ‘특종’은 비빔밥처럼 여러 장르적 색채가 섞여있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다는 점에서 놀랍다.
영화적 톤 앤 매너를 지키기 위해 (블랙 취향이긴 하지만) 코미디로 시작해 스릴러로 끝내는 서사와 균형점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은데 이야기가 뒤틀리거나 이질적이지 않게 잘 정돈된 느낌이다. 이게 노덕 감독의 계산된 연출인지 아니면 김창주 편집 기사의 노련함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관객의 심박수를 끌어 올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또한 이런 장르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맥거핀 활용인데 ‘특종’은 이점에서도 영리함을 보인다. 관객 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예 극 초반 범인을 오픈하고 가는 스릴러가 증가 추세지만 ‘특종’은 끝까지 범인을 숨겨두며 관객과 머리싸움을 벌인다. 곳곳에 ‘저 놈인가?’ 하는 맥거핀을 심었다가 퇴장시키는 페인트 모션이 영화를 한결 풍성하게 해준다.
부제이자 영화 속 액자 구조인 ‘량첸 살인기’의 주인공 대령까지 동원하며 관객 예상을 살짝살짝 비껴가는 핸들링도 승차감을 방해하지 않는다. 우직하게 한 차선만 타는 게 아니라 뒤차 주행을 방해하지 않으며 여러 번 깜빡이도 넣고 주행 모드도 바꿔 운전하는 것 같은 숙련도도 감지된다. 어쩌면 감독은 ‘특종’과 ‘량첸 살인기’라는 타이틀을 나란히 병기할 때부터 관객의 기대치를 넘어서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방송국의 한바탕 ‘웃픈’ 소동극이 나오고 출세에 대한 언론인의 밑바닥 욕망을 땔감으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주인공이 범인과 협상하고 농락당한다는 점에서 ‘더 테러 라이브’가 연상되지만 둘은 DNA가 다르다. 아주 결정적인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더 테러 라이브’는 대통령의 사과를 바라는 테러범을 통해 사회 고발 성격을 가미한데 비해 ‘특종’은 보다 오락성에 충실하다.
어느 조직보다 상명하복이 심하고 게이트키핑이 철저한 언론사를 편의적으로 다룬 점이 아쉽지만, ‘기레기’라는 말까지 듣게 된 일부 무늬만 기자인 언론사들의 하향평준화를 감안하면 그나마 현실적인 방송국 모습을 그렸다는 생각이다. 22일 개봉./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