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이후 최고의 역작이라고 할 만한 드라마가 나타났다. ‘송곳’이 그 주인공이다. ‘미생’ 후 우리네 고단한 현실을 담은 드라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랑, 불륜 등으로 가득한 드라마들이 줄을 이었고 세상에 지친 ‘을’을 위로할 만한 드라마가 없는 가운데 ‘송곳’의 등장은 반가웠다.
원작인 웹툰 ‘송곳’은 네이버 평점 9.96을 기록할 만큼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유는 주인공 수인이 대한민국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는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기 때문.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송곳’의 드라마화가 결정되고 방송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앞서 ‘미생’이 스펙위주 사회, 직장인들의 애환을 섬세하게 담으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줬던 것처럼 ‘송곳’ 또한 갑 앞에서 한없이 약하고 부당하게 당하는 을과 갑에게 맞서는 을의 모습을 거침없이 그려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난 24일 방송된 JTBC 특별기획 ‘송곳’(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 1회분에서는 구고신(안내상 분)이 체불임금을 해결하고 푸르미마트 과장 이수인(지현우 분)이 부장 정민철(김희원 분)에게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을 내보내라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고 이를 거절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초반부터 ‘사이다’ 같은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다. 구고신이 오토바이를 고장 냈다는 이유로 임금을 받지 못해 밥 한 끼 못 먹는 청년을 위해 직접 나서 악덕 사장에게 돈을 받아냈다. 고신은 청년이 일했던 중국집 사장을 찾아가 체불임금 받으러 갔다. 사장은 경찰 부르겠다고 했고 고신은 근로기준법을 읊으며 700만원을 청년에게 주라고 했다.
사장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고신은 공단 직원들에게 전화해 해당 중국집을 이용하지 말라고 전화를 돌렸고 결국 중국집 사장은 임금을 주겠다고 했다. 청년은 감사의 뜻으로 받은 임금 중에 일부를 사례금으로 줬다. 이에 고신은 “쓸 데 없는 어른 흉내 내지 말고 니 밥그릇이나 잘 챙겨라”라고 인사하고는 명함을 주고 떠났다. 구고신과 같은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에서 그의 모습은 통쾌했다.
이수인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했다. 이수인을 통해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그렸기에 더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힘과 돈이 없어 출세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에 갔지만 불의를 참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가 돌아온 건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었다. 푸르미마트에서도 정민철의 지시에 “불법이다”라고 얘기했지만 정민철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지 않아도 회사가 어떻게 해서든 직원들을 내보내려고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수인은 크게 괴로워했다. 수인이 정민철의 지시를 거절하면서부터 ‘갑’과 ‘을’의 싸움은 시작됐다.
이제 ‘송곳’은 푸르미마트 직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부당해고 사건을 통해 폭주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고 깊숙하게 파고들 예정이다. 연약하고 시시한 약자들을 위한 드라마 ‘송곳’. ‘미생’ 이후 최고의 역작이 될 거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kangsj@osen.co.kr
[사진] JTBC ‘송곳’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