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의 지현우가 약자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친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 앞에 굴복하지 않고 ‘을’과 함께 맞선다. 앞서 ‘미생’의 장그래(임시완 분)가 치열한 직장 생활에서 고군분투 하는 미생의 모습을 보여주며 직장인들을 위로했던 것처럼 지현우는 이수인을 통해 노동자들의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JTBC 특별기획 ‘송곳’(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은 부당해고를 당한 푸르미마트의 직원들이 참혹한 대한민국의 현실과 싸워가는 이야기를 아주 날선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 지현우는 극 중 푸르미마트 야채청과 파트 과장 이수인 역을 맡았다.
이수인은 원리원칙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인물로 겉으로 보기엔 딱딱하고 꽉 막혀 보이지만 사실 깨어있는 의식과 행동할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 화이트칼라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블루칼라가 겪는 갈등을 무시하지 않고 맞설 줄 아는 캐릭터인 것.
‘미생’의 장그래는 스펙성형까지 하는 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에 자격증도 없이 대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뒤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비정규직의 절규, ‘을’의 서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고졸출신이지만 실력을 인정받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수인은 장그래처럼 비정규직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직원들을 위해 싸울 예정이다.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이 결정된 후 회사의 압박이 심해지고 급기야 노동자들이 인간적 모욕까지 받으면서 이수인은 마트 노동자들과 함께 구고신(안내상 분)의 도움을 받아 노조를 조직하고 정리해고에 대항한다.
이수인은 푸르미마트에서 상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직원이고 과장급이라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는 위치지만 해고 위기에 처한 직원들을 위해 나서는 사실 자체만으로 시청자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지현우는 ‘송곳’ 제작발표회에서 “마트에서 힘들게 일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신 한 신 찍고 있다.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웃음이 없더라.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을 때 ‘송곳’이라는 작품에 그분들의 마음을 힐링 해 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이 드라마를 통해 본인이 전하고 싶은 것에 대한 바람을 드러냈다.
이수인은 지난 24일 방송된 1회부터 정민철(김희원 분)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통쾌함을 선사했다. 이수인은 푸르미마트 부장 정민철(김희원 분)으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판매직 전원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것도 “인격모독이든 징계든 해서 제 발로 나가게 하든 짜르든 뭐든 좀 해봐라”라는 지시였다.
이에 대해 이수인은 “알았다”는 말이 아닌 “불법이다. 난 못하겠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 세상을 살면서 이수인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체제에 대한 철저한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수인의 대답은 이상적이지만 ‘송곳’이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당시 노조위원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상적이지만도 않다. 극도의 리얼함을 담은 ‘송곳’ 속 이수인은 앞으로 마트 직원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과연 이수인은 장그래와 같이 서민들의 히어로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kangsj@osen.co.kr
[사진] JTBC ‘송곳’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