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청춘FC에 안정환이라는 감독이 없었다면 청춘들의 축구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축구에 대한 열정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미생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안정환은 이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가능성을 이끌어냈으며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청춘들을 응원했다.
청춘FC에게 있어 안정환은 이른바 ‘츤데레’ 감독이었다. 거침없는 독설로 선수들의 눈물을 쏙 뺄 만큼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속은 한없이 따뜻했고, 그들의 절실한 마음과 상처를 헤아리고 감쌌다. 지난 24일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 마지막 회에서도 이런 그의 모습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이날 청춘FC는 K리그 챌린지 선발팀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경기 하루 전 날, 선수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훈련을 위해 운동장으로 모였고 안정환은 뜬금없이 한 명씩 돌아가며 이들과 악수를 나눴다. “내일 경기 끝나면 너희가 악수 안 해줄 것 같아서 손 한 번 잡아볼게”라며 쑥스러운 듯 내뱉는 그의 말에는 함께 한 첫 제자들을 향한 진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찾아 온 디데이.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는 숙소에는 지난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아쉽게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오성진이 나타났다. 깁스를 하고 나타난 그의 모습에 안정환은 속상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쉴 때가 더 좋을 때가 있다. 그 때 잘 쉬고 재활 잘하면 오히려 좋아지는 선수가 있는데 너도 좋아지는 선수 쪽으로 됐으면 좋겠다”라며 부상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을 제자를 위로했다. 그 역시 선수 시절 직접 겪어 본 시련이었기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이어 안정환은 K리그 챌린지 선발팀과 마지막 경기를 펼치게 될 청춘FC를 위해 모든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라인업을 구상했다.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그의 배려였다. 주로 벤치 멤버였던 선수들이 다수 포진된 청춘FC는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주는 챌린지 선발팀과의 경기 초반부터 연거푸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겠다는 각오로 그라운드에 들어 선 선수들은 끝까지 버텼고, 전반전을 무승부로 마무리했다.
후반전이 이어졌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챌린지 선발팀에게 코너킥을 내 준 청춘FC는 선제골을 허용했고, 이어 두 번째 골을 내주고 말았다. 마지막 경기라는 부담감 때문일까, 청춘FC는 계속해서 만회골의 기회를 노렸지만 끝내 2:0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안정환은 “못해서 끝내는 게 더 낫다. 그래야 다음에 더 잘할 거 아니냐. 마지막에 보약 한 그릇 먹고 가네”라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청춘FC와의 모든 여정이 끝나고, 안정환은 “내가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 까칠하고 욕도 많이 하고. 나를 상대로 따라오는 게 힘들었을 텐데 따라와 줘서 고마웠고 너희가 좋아서 시작한 축구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모든 선수들을 입단 테스트부터 최종 엔트리 선발, 유럽 훈련, 국내 프로팀들과의 경기까지 이끌어 온 안정환이 있었기에 청춘FC는 성장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아 시간이 더디게 가길 바랄 정도로 간절하면서도 행복했던 시간을 선사해준 그였다. 축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로 인해 받았던 상처, 그토록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을 겪은 후 어둡고 닫혀있던 선수들은 웃음을 되찾았고,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희망을 얻었다. 안정환, 그가 있어 청춘FC는 지금처럼 빛날 수 있었다. / nim0821@osen.co.kr
[사진] '청춘FC'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