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사들의 연탄배달 봉사 모습은, 말하자면 이맘때 쯤이면 늘 익숙하게 등장하는 하나의 단골 뉴스 소재다. 이는 분명 검은 연탄에 의지해 길고 추운 겨울을 또 한 번 보내야하는 소외 계층들을 위한 나눔의 일환이기에, 그 의도야 어쨌건 반복되는 모습에도 여전히 훈훈한 광경임을 부정할 수 없다.
벌써 3년째,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을 찾은 배우 박해진 역시 그런 대중의 시선 끝에 위치한 이들에 포함된 1인이다. 하지만 지난 24일 오후 OSEN이 바로 곁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살갗으로 느낀 박해진의 구룡마을 봉사는, 그저그런 '단순한' 연탄배달 만은 아니었다.
매년 가을께 구룡마을을 방문해 연탄과 생필품, 상품권 등을 전하며 온기를 나눴던 박해진은 이날도 구룡마을에 살고 있는 기초수급자 152가구를 대상으로 생필품과 연탄지원을 위한 기부금 기탁 및 연탄배달을 펼쳤다. 잊을만 하면 계속되는 그의 끊임없는 국내외 기부활동 소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서서 봉사자들과 땀방울을 흘리며 전하는 연탄배달 봉사는 더욱 특별했다.
박해진은 봉사가 예정된 오후 1시에 봉사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강남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 골목이자, 눈앞에 펼쳐진 도곡동 주상복합빌딩과 대조되는 참으로 이질적인 공간인 구룡마을에 도착한 것.
더욱이 이날 박해진과 함께 봉사활동에 나선 이들은 그를 인터넷에서 겨냥했던 악플러들이었다. 지난 4월부터 인연을 맺어온 아동양육시설 아이들, 그리고 그가 졸업한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후배들도 뜻깊은 연탄배달 봉사에 동참했다.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박해진의 세심한 결정이었다.
당일 새벽에 빗줄기가 세차게 내렸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룡마을의 하늘은 화창했고 햇살은 따가웠다. 온도는 22도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추워서 손이 시릴 정도였는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그게 걱정이다"는 게 지난해에도 함께 봉사를 했던 박해진 소속사 더블유엠컴퍼니 관계자의 이야기였다.
처음 현장을 찾은 OSEN 기자와 일부 봉사자들이 준비과정에서 우왕좌왕하던 모습과는 달리, 박해진은 이제는 꽤 능숙한 손놀림으로 연탄배달을 위한 준비를 금방 끝마쳤다. 우의를 걸치고, 팔토시, 비닐장갑, 목장갑, 그리고 검은색 앞치마까지 동여맸다. 눈에 익은 몇몇에게는 안부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들과 배달을 위해 첫 번째 집으로 향했다.
연탄배달은 그저 한 곳에 선 채로 건네받은 연탄을 다시 옆사람에게 건네기만 하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다. '이게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말은 첫 집에서부터 그야말로 쏙 들어갔다. 200장의 연탄이 내 손에 들어왔고, 연탄의 무게를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곧바로 옆사람에게 건넸다. 생각보다 무겁고, 의외로 으스러지기 쉬운 연탄을 반복적으로 빨리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뜨거운 날씨도 복병이었으며, 덕분에 우의 안으로는 단 몇 분만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박해진은 그 와중에도 "(연탄을) 건네는 방향이 중요하다", "쌓는 게 가장 어렵다" 등의 말로 연탄배달 봉사를 처음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조언도 건넸다. "연탄을 떼본 적이 있느냐?"며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하기도, "전공이 뭐냐", "그 드라마 봤느냐?"며 학교 후배들을 살뜰하게 챙기며 봉사현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 집, 두 집, 창고에 연탄이 차곡차곡 채워지고, 온기를 넘어 열기가 느껴지는 구룡마을. 박해진은 우의가 거추장스러웠는지, 우의까지 벗어던지고 더욱 연탄 전달에 매진했다. 틈틈이 어르신들에게 안부인사를 전하고, 준비한 선물을 안겨드리기도 했다. 한결같이 "정말 고맙다"는 인사와 얼굴 가득 버진 웃음이 그에게 되돌아왔다. 박해진 역시 시작부터 온종일 미소가 가득이다.
이날 구룡마을 집들에 배달된 연탄은 총 2500장. 물론 연탄 뿐만 아니라 쌀, 라면, 세제 등의 생활용품 쿠폰까지 총 6000만원 상당의 물품이 고루 전달됐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통해 연탄배달까지 겸하면, 연탄 1장의 배달가격을 아낄 수 있어 더 많은 연탄을 나눠줄 수 있다는 따뜻한 논리였다. "이렇게 현장에 나와서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연탄을 배달하면, 돈으로 하는 기부로는 채우지 못하는 뭔가를 채울 수 있다. 그분들의 표정을 보고 돌아서면 따뜻함으로 채워진다"는 박해진의 말은, 그가 전하는 게 단순히 연료로서의 '연탄' 그 이상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연탄 수가 적지 않았음에도 예상보다 배달이 일찍 마무리 됐다. 시작한지 2시간 남짓이 지난 시점이었다. 학교 후배들까지 가세하면서, 인원이 지난해보다 갑절은 훌쩍 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많아 지난번보다 연탄배달이 너무 수월했다"고 하는 박해진의 발언에 평생 봤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연탄을 손에 쥐었던 탓에 바들바들 손이 떨렸던 기자의 모습이 괜히 멋쩍었다.
더운 날씨에 뙤약볕에서 연탄을 날랐던 봉사자들을 위한 박해진의 보답도 이어졌다. 각종 분식류를 가득 채운 밥차를 현장에 준비한 것. 봉사가 끝난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특히 박해진은 손수 음식들을 직접 나눠주는 모습으로 또 한 번 적잖은 감동을 자아냈다.
박해진이 3년째 구룡마을 소외계층 주민들에게 건넨 건 단순히 '연탄'으로 치부하기엔 더 꽉 찬 뭉클한 뭔가가 확실히 있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가 무릇 보여줬으면 하는 모습이자 태도다. 박해진은 '연탄'을 건네 온정을 그들과 나눔으로써, 또 한 번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구룡마을에 온기를 더했다. 모든 걸 끝마친 뒤 "무슨 수억원이 드는 것도 아니고, 와서 연탄 몇 장 나르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는 말과 함께 웃는 박해진의 모습은 분명 이전보다 새삼 더 빛이 나는 듯 했다. / gato@osen.co.kr
[사진] 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