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 배우 박해진이 방문했다. 드라마 촬영이 아니다. 벌써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연탄배달 봉사를 위해서다. 더욱이 온라인상에서 자신에게 차가운 악플을 겨눴던, 악플러들과도 함께다.
박해진은 지난 2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에서 악플러를 비롯해 지난 4월부터 인연을 맺어온 아동양육시설의 아이들, 그리고 그가 졸업한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후배들과 연탄배달 봉사에 임했다. '나눔'의 의미를 주변인과 함께 공유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세심한 결정이다. OSEN 기자도 이날의 박해진이 앞장선 연탄배달 봉사에 동참했다. 쉬는 시간을 틈타 '봉사'에 대한 박해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궁금했던 건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었다. 분명 박해진은 자신이 벌어들이는 활동 수입 중 일부분을 금전적 기부 형식으로 꾸준하게 이곳 저곳을 통해 나눔을 실천해왔던 그다. 최근 tvN 새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주연으로 발탁돼, 한창 촬영을 진행중인 탓에 바쁜 스케줄을 소화중인 그가 '굳이' 직접 나서서 연탄까지 나를 필요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대중의 시선이니 말이다.
매년 가을 구룡마을을 방문해 연탄과 생필품, 상품권 등을 전하며 온기를 나눴던 박해진은 이날도 구룡마을에 살고 있는 기초수급자 152가구를 대상으로 생필품과 연탄지원을 위한 기부금 기탁 및 연탄배달을 펼쳤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무려 6천만원이다. 잊을만 하면 이어지는 그의 국내외 기부 소식, 그럼에도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서서 봉사자들과 땀방울을 흘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돈으로 채우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고민 없이 곧바로 돌아온 박해진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그는 "돈의 액수만 늘린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는 게 분명히 있다. 단지 돈을 건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연탄을 그 집에 배달하고 나올 때, 웃어주는 어르신분들의 모습을 보면 뭉클하다. 돈으로 하는 기부로는 채워지지 않는 따뜻함이다"고 설명했다.
봉사활동을 통한 연탄배달을 겸하면, 연탄 1장 배달가격을 아낄 수 있어 같은 금액에 더 많은 연탄을 고루 나눠줄 수 있다는 따뜻한 논리도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모습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상당하다. 이른바 이미지를 위한 '언플'(언론 플레이)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박해진은 "이렇게 나서서 봉사를 하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했을 때, 좋든 나쁘든 더 많은 사람들이 소외 계층을 단 한 번이라도 떠올리게 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이날 그와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이들 중에는 지난 4월부터 후원하며 돌보고 있는 아동양육시설 아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그들에게 '나눔'의 실천을 통해 그 마음을 꼭 느끼게 해주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고, 그들도 흔쾌히 수락해 성사됐다. 그들 역시도 누군가의 '관심'으로 지금처럼 밝아질 수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분명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밝게 자라고 있다.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사람들의 지속적인 애정이 필요하다. 처음 있었던 선입견도, 정말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모두 씻겨 나갔다"고.
박해진이 연탄배달 봉사현장을 방문해, 채울 수 있는 것은 또 있었다. 그건 바로 마음의 위안. 그는 "배우가 마음 편한 직업은 결코 아니다. 여러 가지로 시달리고, 마음을 기댈만한 사람도 곁에 많지 않다"며 "그저 시덥잖은 농담을 건네거나, 근황을 물을 만한 사람도 마땅치 않다. '어떻게 지내니?', '너 요즘 살 쪘네', '그 드라마는 봤니?'라고 묻는 평범한 일상을 이런 곳에 와서야 체감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실제로 이날 박해진이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 모습이 십분 이해가 되는 답변이었다.
앞서 올해초 허리를 크게 다쳐 약물치료와 재활을 병행했던 것을 묻자 "5~6월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지금은 많이 호전됐다"며 "연탄이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겁겠느냐. 이정도는 괜찮다"며 손을 내젓는다. 이어 "수억원이 드는 것도 아니고, 와서 연탄 몇 장 나르면 되는 일"이라는 그의 단촐한 설명은 그러니 더 멋있을 수 밖에 없다. 그가 3년째 이어온 이 일이 그의 말처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번지고,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날이 성큼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 gato@osen.co.kr
[사진] 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