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송곳'의 안내상은 송곳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꼭 있다고 한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현우는 그가 말한, 부당함을 눈감지 못해 끝내 뚫고 나오고야 마는 송곳 같은 사람이다.
지난 25일 오후 방송된 JTBC '송곳'(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에서는 푸르미마트 점장인 갸스통(다니엘 분)의 지시를 "불법"이라며 따르지 않는 수인(지현우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수인은 마트 직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고시키라는 회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되려 노조에 가입하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래 수인은 옳지 않은 일에 동의하지 못하는 성격. 그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으로 안정된 미래가 보장돼 있음에도 불구, 상관의 부당한 납품비리를 견디지 못해 전역을 한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찾은 새로운 조직이 푸르미마트였다. 프랑스계 마트인 푸르미마트의 기업문화는 합리적인 수인과 잘 맞았고, 수인은 박봉에도 그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 회사가 판매원들을 해고, 엄밀히 말해 스스로 사직서를 쓰도록 만들라고 과장단 및 부장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 같은 지시에 모든 과장들은 반발했으나, 그들도 곧 어쩌지 못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마지못해 하던 일들은 곧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됐고, 양심에 찔리는 듯 수인의 눈을 피하던 이들도 이제는 오히려 당당하게 그를 바라보고 따돌리기까지 하는 때가 왔다. 오직 수인만이 그에 따르지 않고, 원래대로 하던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매장을 방문한 점장 갸스통은 마트 매장에서 수인을 불러 헤드락을 걸고 공개적으로 굴욕을 줬다. "왜 내 지시를 따르지 않느냐?"는 갸스통에게 "직원을 괴롭히는 건 지시가 아니다"라고 답한 수인. 화가 난 갸스통은 "보여주겠다"며 수인의 밑에 있는 매장 직원들을 불러 "여러분은 임금 인상도 없고, 다른 점포로 이동도 없다. 여러분은 영원히 내 밑에서 고통받을 거다. 왜냐면, 여러분의 과장 이수인 때문이다"라고 엄포를 놨다. 이를 그대로 통역하는 수인의 표정에는 수치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갑작스럽게 굴욕을 당한 수인은 각성했다. 정말로, 이제는 회사를 상대로 싸울 의지를 갖게 된 것. 그는 "기분이 아주 더럽다. 하지만 더이상 혼란스럽지 않다. 난 이미 죽었고, 내 발로 알아서 치워져줄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날 치워봐라"라고 회사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의지를 불태웠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인과 같은 상황에 한번쯤, 혹은 여러번 처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수인 같은 선택을 쉽게 하지는 못한다. 튀는 것을 용납받지 못하는 사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신(안내상 분)의 말처럼 누구나 그래도 되는 환경 속에서는 그렇게 변한다. 그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하는 수인과 같은 사람은 어딘지 현실적이기 않은,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을 극대화해 만든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답답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가 어딘지 모르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면 이처럼 우리가 한번쯤 보고 싶었던, 불의에 홀로 꿋꿋이 저항하는 수인 같은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송곳'은 갑작스럽게 부당해고에 직면한 푸르미마트 직원들이 대한민국 사회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똘똘 뭉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ujenej@osen.co.kr
[사진] '송곳'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