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A 0’ 정영일, SK 최대 기대주 증명했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0.28 13: 00

‘청운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넜다. 주위에서는 수많은 기대가 쏟아졌다. 계약금 110만 달러라는 거금은 어깨에 걸려 있는 기대를 증명했다. 최고의 길을 걸었고 성공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라는 땅은 정영일(27, SK)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팔꿈치는 아팠고 이런저런 장애물이 정영일을 기다렸다. 결국 이렇다 할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그로부터 8년 뒤. 정영일은 다시 미국 땅을 밟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갓 고교를 졸업해 나이가 ‘무기’였던 정영일은 어느덧 20대 후반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 다른 것은 또 있었다. 입고 있는 유니폼이 달랐다. 야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절실함도 더해졌다. 어쩌면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정영일은 “모든 것이 좋았다”며 웃으며 시원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방문한 미국은 그에게는 ‘희망의 땅’이었다.
모진 풍파를 겪은 끝에 2014년 신인지명회의에서 SK에 지명된 정영일은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10월 제대해 SK 선수단에 합류했다. 그리고 곧장 애리조나 교육리그로 건너갔다. 제대 이후 곧바로 애리조나로 향해 컨디션이 우려됐지만 기우였다. 어깨에 힘이 넘쳤다. 몸도 아프지 않았고 마음도 홀가분해진 정영일은 150㎞를 대수롭지 않게 뿌리며 교육리그를 평정했다.

정영일은 이번 SK 교육리그 참가자 중 가장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교육리그 6경기에서 6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피안타는 단 2개, 볼넷은 하나였던 반면 탈삼진은 무려 10개였다. 등판 때마다 평균 140㎞대 중·후반의 공을 던지며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장기적인 미래를 보고 정영일을 지명해 곧바로 군에 보낸 SK가 내심 흥분할 만한 투구내용이었다.
교육리그라고는 하지만 마냥 어린 선수만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트리플A급 선수들도 더러 있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재활 경기를 벌이는 무대이기도 하다. 실제 SK는 야시엘 푸이그(LA 다저스)를 상대하는 값진 경험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체 조건에서 월등한 선수들이다. 그래서 정영일의 투구는 더 빛이 났다. 힘 좋은 미국 타자들을 압도했다. 정영일도 “정말 좋았다. 이렇게 150㎞대의 공을 꾸준히 던진 적이 없었다”라며 밝게 웃었다. 이제 기나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 했다.
이번 교육리그를 “뜻 깊은 시간”이라고 대번에 정의하는 정영일이다. 정영일은 “사실 처음에 미국에 갔을 때는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방출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SK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미국에 갔다. 옛날 생각도 많이 했다”라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제춘모 코치님이 많이 보살펴 주셨고, 최현석 트레이너님이 짜준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했더니 몸도 많이 좋아졌다”라고 되돌아봤다. 상무 시절 짧은 시간에 다소 많은 이닝을 던지기는 했지만 착실한 훈련 덕에 후유증은 크지 않다고 자신하는 정영일이다.
보완점도 머릿속에 뚜렷하게 새기고 돌아왔다. 정영일은 “역시 제구와 변화구가 가장 큰 관건이다”라고 짚었다. 상무에서 퓨처스리그(2군) 경기는 적잖게 나섰지만 1군은 차원이 다르다.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제구의 안정성과 변화구 제구가 절실하다는 게 정영일의 생각이다.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정영일은 “슬라이더 외에도 체인지업·스플리터·커브를 좀 더 완벽하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겨울 과제를 뽑았다.
만약 정영일이 이런 과제까지 슬기롭게 푼다면 SK 마운드는 한층 더 강화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정영일은 다음 시즌 SK의 마무리 후보 중 하나로 뽑히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선발로도, 혹은 롱릴리프로도 뛸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다만 정영일은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보직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 지금으로서는 1군에 진입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라고 자세를 낮춘다. 차분하게 한걸음씩 나아가겠다는 각오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라는 말을 증명할 수 있을지, SK가 숨죽여 정영일의 어깨를 지켜보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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