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의 독기가 안방극장을 서늘하게 했다. 박은혜는 자신의 연기 인생 2막을 알리듯, 그간 쉽게 볼 수 없던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의 이야기에 몰입도를 높였다. 박은혜는 어린 시절 혼례를 약속했던 유오성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섬뜩한 모습으로 앞으로의 활약에 기대를 더했다.
지난 28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장사의 신-객주2015’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천소례(박은혜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소례는 18년 동안 신분을 감추고 천가객주를 집어삼킨 환전객주 김학준(김학철 분)의 첩실로 살아왔는데, 이날 김학준 앞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원수를 갚았다.
김학준은 천소례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죽을 위기에 처하자 “네 아비 천오수를 죽인 건 내가 아니다. 네가 복수할 대상은 내가 아니다”라며, “먹고 먹히는 게 인생이다. 살려다오. 난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살려다오”라고 목숨을 구걸했다. 이에 천소례는 목숨을 살려줄 테니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범인의 이름을 대라고 했고, 김학준은 길소개(유오성 분)를 지목해 천소례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천소례는 어린 시절 길소개와 혼인을 약속할 정도로 그를 세상에서 가장 믿고 있었던 것. 천소례는 자신과 혼인해 천가객주를 이끌어가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도망간 길소개의 행동의 이유를 알아차리면서, 다시 만난 길소개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천소례는 죽은 아버지가 용서했던 것처럼 길소개를 용서하려고 애썼지만, 자신의 심복인 득개(임형준 분)에게 “도저히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다”며 결국 그를 죽이라고 명했다.
특히 박은혜는 천소례의 복잡한 심경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어 시선을 끈다. 박은혜는 18년 동안 복수의 대상과 함께 살아온 천소례의 처절한 마음을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표현하고, 배신당한 유오성과 마주할 때는 원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안타까움을 안기더니, 곧 분노에 휩싸인 무서운 여인으로 돌변, 그가 어디까지 복수를 이어가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했다.
박은혜는 그간 단아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복수밖에 남지 않은 여인의 처절함을 쏟아내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도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박은혜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인물로 극의 갈등의 큰 축을 담당하며 극을 끌고 가고 있는 것. 박은혜는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이번 역할을 잘 소화하지 못하면 앞으로 연기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고 있다”는 남다른 각오를 전한 바 있다.
‘객주’를 연출하는 김종선PD 또한 “사실 박은혜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가장 빨리 이 드라마에 흡수된 분이다”라고 전했을 정도. 이처럼 박은혜는 본인의 물러날 곳 없는 각오와 주변의 기대에 걸맞은 열연으로 시청자마저 설득하며 극성이 강한 ‘객주’의 묵직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일등공신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어 호평을 끌어낸다.
한편 '장사의 신-객주 2015'는 폐문한 천가객주의 후계자 천봉삼(장혁 분)이 시장의 여리꾼으로 시작해 상단의 행수와 대객주를 거쳐 거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린다./jykwon@osen.co.kr
[사진]‘객주’ 방송화면 캡처